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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영 칼럼
오컬트(occult)의 화려한 부활
2024. 03. 14 by 울산제일일보

스코틀랜드의 용맹한 장군인 ‘맥베스’는 전쟁터에서 반란군을 진압하고 돌아오는 길에 친구인 뱅코와 함께 광야에서 마녀들을 만나 예언을 듣게 된다. 예언의 내용은 맥베스가 코더의 영주를 거쳐 장차 왕이 될 것이며, 뱅코의 자손들도 언젠가는 왕이 될 거라는 것이다. 맥베스와 뱅코는 이 말을 믿지 않았으나, 던컨 왕은 전공을 세운 맥베스에게 마녀가 예언했던 것처럼 코더 영주의 작위를 하사한다.

크게 놀란 맥베스는 자신의 성으로 돌아와 이 사실을 아내에게 털어놓는다. 야심이 넘쳤던 맥베스 부인은 맥베스에게 왕을 죽이도록 회유하고, 결국 예언에 홀려버린 맥베스는 자신의 성에 들어와 잠을 자고 있던 던컨 왕을 살해하고는 이내 스코틀랜드 왕위에 오른다.

그리고 맥베스는 뱅코의 아들이 장차 왕들의 조상이 될 것이라는 또 다른 예언을 두려워한 나머지 뱅코와 그의 아들인 플리언스를 죽이려 시도한다. 뱅코는 살해했으나 플리언스는 살아남아 도주한다. 이후 맥베스는 뱅코의 유령을 보게 되고, 미쳐가기 시작한다.

맥베스는 다시 마녀들을 찾아가 예언을 듣는데, 그 예언에 따라 애꿎은 한 귀족 일가를 몰살한다. 이 사단을 빚은 맥베스 부인도 몽유병에 시달리다가 결국 미쳐서 죽게 된다. 이윽고 도망갔던 던컨 왕의 아들 말콤 왕자가 잉글랜드의 지원에 힘입어 스코틀랜드에 돌아오고, 맥베스의 잔혹한 통치에 불만을 품었던 귀족들도 그에 호응하며 반란이 일어난다. 그리고 현실성이 없다고 믿었던 마녀들의 예언이 맞아떨어지면서 맥베스는 참혹한 죽음을 맞게 된다.

이상은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의 줄거리이다. 현대 과학문명을 이끌어낸 근세의 유럽에서 쓰인 글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오컬트(occult,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현상)적인 글이다.

필자가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해마다 정초가 되면 ‘수양어머니’ 댁에 세배를 가곤 했다. 오륙십 대의 얼굴이 하얀 인자한 분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무당이었다. 제대로 일어서거나 걷지를 못해 어디로 이동하려면 남의 등에 업혀 다녔었다. 한번은 이웃집에서 ‘굿’을 한다 해서 구경을 간 적이 있다. 평소와는 달리 알록달록한 옷과 깃이 달린 모자를 쓴 수양어머니가 굿판을 벌이고 있었다. 나를 깜짝 놀라게 한 건, 평소엔 잘 일어서지도 못하던 분이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벌떡 일어나 작두에 올라가 펄쩍펄쩍 뛰며 작두를 타는 게 아닌가.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는 걸 보면 당시의 충격이 대단했던 것 같다.

학창시절 내내 ‘미신을 믿지 마라’라는 교육을 받았고, 부모님도 독실하게 절에 다니시게 되면서 무속 혹은 오컬트적인 세계와 멀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 초년생 시절에 읽었던 이문열의 소설 ‘황제를 위하여’를 감명 깊게 읽으며 이런 생각은 더욱 공고해졌다.

얼마 전 영화 ‘파묘(破墓)’가 개봉되면서 온 나라가 다시 오컬트 열풍에 빠지고 있다. 파묘란 묫자리를 옮기거나 고쳐 묻는 걸 의미하는 건데, 이는 풍수지리 사상에 근거하고 있다. 예로부터 묫자리를 잘 쓰면 자손이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리는데, 안 좋은 자리에 묘를 쓰면 자손들이 패가망신(敗家亡身, 집안의 재산을 다 써 없애고 몸을 망침)한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도 음력 윤달이면 전국 곳곳에서 묘를 이장하거나 파묘하는 풍습이 횡행하고 있다.

과학기술이 극도로 발달한 21세기지만 아직도 우리 내면에는 샤머니즘, 토테미즘, 사주, 관상, 풍수지리 같은 초자연적인 힘에 의지하고자 하는 유전자가 남아있는 것 같다. 우리 민족의 원형이라고 더러 거론되는 바이칼 호수 인근의 소수민족인 ‘부리야트 족’은 아직도 곳곳에 솟대와 서낭당을 설치하고 샤먼(무당)에게 대소사를 의지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특히 소련 붕괴 이후엔 샤머니즘이 소련 시절 이전처럼 왕성하게 되살아났다고 한다. 그리고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전혀 있을 것 같지 않은 북한에도 점집이 있다고 한다.

우리 민족의 전통을 잇는 것인지 대한민국도 요즘 오컬트 광풍이 불고 있다. 몸에 부적을 쓰거나 이사 갈 집터의 풍수를 보는 것이 공공연해졌다. 고백하건대, 필자도 시대의 조류에 뒤질세라 전엔 전혀 안 하던 이사 날짜 택일을 이런 쪽에 정통한 지인에게 물어보고 그 날짜에 맞춰 최근에 이사를 했다.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주) 대표이사·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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