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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영 칼럼
영화 ‘서울의 봄’과 이런저런 생각
2023. 12. 11 by 울산제일일보

요즘 김성수 감독이 연출한 ‘서울의 봄’이란 영화가 장안의 화제다. 1979년 12월 12일 반나절 동안에 벌어진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필두로 한 신군부 세력의 군사쿠데타를 박진감 있게 그린 영화란다. 필자는 아직 안 봤고, 솔직히 그리 보고 싶지 않은 영화다. 당시나 현재의 상황이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12·12 쿠데타’ 이전에 ‘10·26 사태’가 있었다. 당시 고3 수험생이었던 필자는 며칠 앞으로 다가온 대입예비고사 준비에 여념이 없을 땐데도 제왕적 권위를 가지고 백성의 존경을 받아오던 대통령의 서거 소식은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뉴스는 무지 제한적이었고 짤막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흉탄에 대통령 각하께서 시해됐다.’라고만 보도됐다. 10·26의 주요 원인이라고 볼 수 있는 ‘부마항쟁(부마민주항쟁)’도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그 전모를 알 수 있었다.

12·12 사태 때도 정승화 당시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의 쿠데타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진압했다고 보도되었다. 하지만 실상은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 세력이 계엄사령관을 연행하고, 최규하 대통령의 사후 재가를 얻어냄으로써 대한민국의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데 성공한 군사쿠데타이다. 이렇게 본말이 전도된 ‘깜깜이 가짜 뉴스’는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계속되었다.

1980년 초봄부터 ‘서울의 봄’을 갈구하며 벌인 신군부 세력에 대한 항거운동은 ‘5·18 항쟁(5·18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졌는데, 이때도 광주지역에서는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소문만 무성했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요즘 MZ 세대들은 믿기 힘들겠지만, 당시의 뉴스원이라고는 정권의 검열을 받는 몇 개 공중파 방송과 중앙 일간지가 다였기 때문이다. 나름 확인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TIME지’나 ‘NEWSWEEK지’ 같은 외신뿐이었다. 하지만 신군부는 이런 외신잡지에도 검열의 총대를 들이밀어 민감한 부분은 모두 검게 색칠이 입혀져 발간되었다. 필자를 비롯한 많은 대학생들이 이 잡지를 사서 햇빛에 비춰가며 검게 덧입힌 글자나 숫자를 읽어내려 애쓰곤 했다. 가끔 보이는 숫자를 통해 최소 수백,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음을 짐작할 뿐이었다.

당시 수많은 시위와 항쟁에도 불구하고 1980년의 ‘서울의 봄’ 운동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7년이 흐른 1987년, 다시 불붙은 서울의 봄 항쟁은 마침내 성공하여 노태우 정권을 5년 단임으로 종식시켰고, 1993년 문민정부 출범의 초석이 되었다. 이후 우리나라에 진정한 서울의 봄이 찾아왔다.

마침 냉전 시대가 종식되고 전 세계가 인터넷을 통한 초연결사회가 되면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시대’가 온 것 같았다. 당시 많은 사회학자들도 당연한 것으로 예상했으나 이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일단 우리나라에 국한해서 들여다보자. 수많은 사조(ism)와 요구들이 난무하면서 사회적 혼란이 야기되었고,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선동적 포퓰리즘의 남발로 제대로 된 정책은 실종되고 경제적 부담만 가중되는 사회가 되었다. 플라톤이 경계한 ‘중우(衆愚)정치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범세계적 현상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자유민주주의의 종말일까, 러시아의 푸틴, 중국의 시진핑, 북한의 김정은, 일본의 아베, 미국의 트럼프 같은 독재형 지도자가 세계 도처에서 우후죽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사회적 현상은 일부 노장년층에서 심심찮게 나오는 ‘차라리 예전의 독재정권이 더 나았다.’라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하고, 서울의 봄 영화에서 전두광이 한 대사와도 다르지 않다. “인간이란 동물은 안 있나, 강력한 누군가가 자기를 리드해주길 바란다니까.”

우리가 서울의 봄 항쟁을 통해 얻고자 했던 ‘자유민주주의’가 최선의 체제는 아닐 것이다. 잘 알려진 유명 정치인의 말대로 ‘가장 덜 나쁜 제도’일 뿐이다. 우리나라도 경험했던 독재체제가 장기화할 때 생기는 폐해를 상기해보자. ‘권력이 한곳에 집중됨으로써 생기는 저급한 정책결정이 때로는 재앙적 결과를 초래하고, 공개 논의나 토론의 결여는 지도자에 대한 낮은 지지로 이어져 한순간에 권력이 무너질 수 있다.’

우리 국민은 불과 몇십 년의 짧은 기간에 다양한 정권과 언론의 변천을 경험했다. ‘12·12 사태’가 발발하고 44년이 지난 지금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게 가능한 비상식적인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주) 대표이사·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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