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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영 칼럼
백거이 詩에서 오르트 구름까지
2023. 11. 07 by 울산제일일보

수년 전 이맘때 친한 친구 한 녀석이 급성간암으로 두어 달 앓더니 저 세상으로 훌쩍 갔다. 9월에 봤을 때도 멀쩡했었는데, 갑자기 발병하더니 하루가 다르게 상태가 나빠지다가 결국 새해를 하루 앞두고 불귀의 객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새해를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맞게 되었다. 장례식장의 한쪽 벽면에는 ‘蝸牛角上 爭何事(와우각상쟁하사), 石火光中奇此身(석화광중기차신)’이라는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시 두 구절이 크게 붙어 있었다. ‘달팽이 뿔 위에서 무엇을 다투는가? 전광석화처럼 짧은 삶이거늘.’쯤의 뜻이다. 친구를 보내고도 한동안 이 글이 혀끝에 맴돌았다.

이 시에 나오는 蝸牛角上은 장자(莊子)의 칙양(則陽) 편이 원전이다. 달팽이 왼쪽 뿔에 사는 촉씨(觸氏) 부족과 오른쪽 뿔에 사는 만씨(蠻氏) 부족이 영토 다툼을 하다가 서로 큰 희생을 치렀다는 우화가 나오는데, ‘이처럼 좁은 지구의 일각에서 다툼을 벌이는 일이 우주에서 보면 얼마나 하찮은 일이냐.’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우주는 과연 얼마나 큰 걸까?

작년 7월 12일부터 본격 가동된 ‘제임스-웹 천체망원경(JWST)’ 덕분에 그간 안 보이던 새로운 천체가 발견되면서 그렇잖아도 광대했던 우주가 점점 더 광막(廣漠)해지고 있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우주의 크기를 수십억 광년쯤으로, 그리고 우주의 나이도 수십억 살쯤으로 어림했는데, 지금은 대략 930억 광년으로 넓어졌으며 나이도 138억 살로 늘어났다. 이 또한 관측기술이 발달할수록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렇듯 가늠조차 안 되는 우주 대신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라도 가늠해 보자.

우주를 가늠할 때는 거리의 단위가 광년(光年)이다. 빛이 1년간 가는 거리로 대략 9조5천억km이다. 반면에 태양계를 논할 때는 AU(Astronomical Unit)라는 단위를 사용한다. 태양과 지구 간의 평균거리를 의미하는데, 대략 1억5천만km이다. 즉 태양과 지구 간의 거리가 1AU이고, 태양-화성 거리는 1.52AU, 태양-목성 거리는 5.2AU, 태양-토성 거리는 9.58AU, 태양-천왕성 거리는 19.18AU, 그리고 가장 먼 행성인 해왕성까지의 거리는 30.07AU이며 대략 45억km이다. 그리고 행성에서 왜소행성으로 격하된 명왕성까지는 대략 50AU 정도인데, 명왕성 거리 대에서 명왕성급의 왜소행성과 소행성들이 잇달아 발견되고 있어서, 이 영역을 카이퍼 벨트(Kuiper Belt)라 한다.

카이퍼 벨트 이후의 영역은 미지의 세계이다. 태양계를 어디까지로 봐야 하는지도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았다. 태양풍이 미치는 범위로 한정할지, 아니면 태양의 중력이 작용하는 데까지로 확대할지에 따라 거리 차이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태양풍이 미치는 범위는 카이퍼벨트의 4배 거리인 200AU 정도인 데 비해, 태양의 중력이 미치는 범위는 5만AU 이상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의 관측결과, 200AU 이상은 태양풍이 미치지 못하므로 이 경계를 헬리오시스(Helliosheath)라 부르며 이 경계 너머를 성간(星間, interstellar)우주라고 한다. 1977년에 발사한 보이저 1호와 2호는 2013년과 2018년에 헬리오시스를 통과하여 마침내 성간우주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태양계를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다. 태양의 중력이 다할 것으로 추정되는 5만에서 10만 AU 사이에 오르트 구름(Oort Cloud)대라 불리는 가상의 태양계 껍질층을 벗어나려면 아직도 수백 수천 년을 더 날아가야 한다.

핼리 혜성의 고향일 걸로 추정되는 오르트 구름대는 더 이상의 가상공간이 아닐 수도 있다. 최근의 놀라운 관측기술의 발달로 가상의 공간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르트 구름을 조사하다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윤하’라는 가수가 이를 주제로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가사 내용도 놀랍다.

“어둠만이 나의 전부였던 동안 숨이 벅차도록 달려왔잖아/ 경계의 끝자락 내 끝은 아니니까/ 울타리 밖에 일렁이는 무언가 그 아무도 모르는 별일지 몰라/ 벅찬 맘으로 이 궤도를 벗어나 새로운 길의 탐험가 껍질을 깨뜨려버리자~”

저녁 산책길에서 태화강 위에 밝게 빛나는 목성을 보니 지구에 살고 있음이 실감 난다. 백거이의 시 나머지 두 행을 음미하며 이 땅에서의 시름을 잊는다. “隨富隨貧且歡樂(수부수빈차환락), 不開口笑是癡人(불개구소시치인)” “부유하든 가난하든 있는 그대로 즐겁거늘, 입 벌리고 웃지 않는 자 바보로세.”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주) 대표이사·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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