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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영 칼럼
피와 눈물이 흐르는 땅, 팔레스타인
2023. 10. 17 by 울산제일일보

폴 뉴먼이 주인공으로 나오고 1966년에 개봉한 ‘영광의 탈출’이란 영화가 있다. 필자 또래의 중장년층에게는 잘 알려진 영화인데, 이 영화의 OST는 더욱 유명해서 영화를 안 본 사람은 있어도 이 음악을 안 들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2차 대전이 끝난 1947년, 영국의 ‘유대국’ 건국에 대한 약속을 믿고 전 세계에서 옛 가나안 땅으로 몰려오는 유대인들이 넘치자 영국은 이들을 키프로스 섬의 수용소에 가두고 통제하고 있는 상황이 이 영화의 배경이다. 유대인 청년인 폴 뉴먼의 지략으로 유대인들은 집단으로 수용소를 탈출해서 약속의 땅에 도착하는 게 영화의 줄거리다. 이들의 집단탈출을 구약성경의 ‘출애굽기’에 비견하였는지 영문 영화명은 ‘Exodus’였다.

이렇게 전 세계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으로 모여든 유대인들은 이 지역에 살고 있던 원주민을 몰아내고 1948년 5월 14일에 유대국 ‘이스라엘’을 건국하게 된다. 그리고 75년이 넘게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과 테러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서 가나안 지역의 역사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가나안은 성경에 나오는 옛 지명이고 오래전부터 이 지역은 ‘팔레스타인’이라 불리고 있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원주민과의 악연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4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2100년경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약속을 받고 유대인들을 이끌고 이 지역으로 이주하면서부터이다. 이 땅에 살고 있던 원주민을 몰아내고 수백 년을 살다가 여러 해 대기근이 들자 이 땅을 떠나 대거 이집트로 집단 이주하게 되었고, 이 땅은 원래 살고 있던 원주민들이 다시 차지하게 된다. 이집트로 이주한 유대인들은 이집트인들의 핍박에 시달리다가 모세의 영도 하에 홍해를 건너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이 땅의 원주민을 다시 몰아내고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하고 천년을 넘게 번성하게 된다.

물론 번성만 했던 건 아니고 수많은 외침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중 구약성경에도 기록된 기원전 6백년경의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침탈은 매우 유명하다. ‘느부갓네살(혹은 네부카드네자르)’ 왕이 이끄는 침략군은 나라 전체를 정복하고 솔로몬이 세운 예루살렘의 성전을 파괴하고 많은 유대인들을 포로로 잡아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때의 참상은 한참 후대인 19세기에 이탈리아 작곡가 ‘쥬세페 베르디’가 오페라 ‘나부코(느부갓네살의 이탈리아 발음)’로 재현하면서 다시 조명을 받았다. 이 오페라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매우 유명하다.

이보다 더 큰 참상은 서기 70년에서 130년경에 로마군이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시작된다. 유대인들을 아예 이베리아반도와 같이 멀리 떨어진 타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켜버린 것이다. 이때부터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고 유럽과 러시아, 중근동 지역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서 살아가게 된다. 이를 디아스포라(Diaspora)라고 한다.

그리고 천팔백 년이 지난 1917년 11월 영국의 외무장관이던 ‘밸푸어’가 유대인이자 금융계의 큰손인 ‘로스차일드’에게 보낸 서한에서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서 민족적 고향을 건설하는 것을 지지한다.’라고 선언하면서 유대국 건설 움직임이 태동하게 된다. 이 선언 이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몰려오기 시작했고(이를 ‘aliyah’라 함), 이 땅에 살던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마침내 1948년 건국하면서 중동의 화약고가 되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국이 건국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주변 아랍국가들과 이스라엘은 그간 여러 번 군사적으로 맞붙었고, 팔레스타인 자치기구인 ‘PLO’와 무장정파인 ‘하마스’와도 수많은 테러와 보복을 반복하며 하루도 평온한 날이 없이 현재에 이르렀다. 그리고 며칠 전, 전쟁에 버금가는 큰 테러 사건이 발생했고 현재 보복전이 진행 중이다.

4천년이 넘는 구원(舊怨)이 쌓인 만큼 해결책 역시 요원하다. 서로를 향한 증오와 복수가 하늘을 찌르는 이곳에 신(神)의 구원은 없는 건가? 다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서로 용서하고 조금씩 양보할 여지도 없는 건가? 다니엘 바렌보임이 결성하여 화제를 모은 ‘서동시집(West-Eastern Divan)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허망하게 들리는 시월의 어느 날이다.



※ 다니엘 바렌보임= 아르헨티나 태생의 이스라엘 지휘자. 팔레스타인과의 평화공존을 외치는 반전(反戰)운동가이기도 하다.

※ 서동시집 오케스트라= 다니엘 바렌보임과 팔레스타인 출신 에드워드 사이드가 1999년에 창단한 청소년 관현악단으로 스페인의 세비야가 본거지다. 이집트와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팔레스타인 등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아랍인 청소년들과 이스라엘의 유대인 청소년들에 스페인 청소년들이 가세한 다국적 악단이다.

※ 서동시집(西東詩集)= 페르시아 시인 하피즈에게서 영감을 받은 독일 시인 괴테의 시집.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주) 대표이사·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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