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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영 칼럼
오펜하이머, 그리고 홍범도
2023. 08. 30 by 울산제일일보

이번 광복절에 국내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가 장안에 화제가 되고 있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줄리어스 오펜하이머(1904~1967)의 전기를 다룬 영화로, 필자의 관심을 끈 대목은 1954년에 벌어진 청문회 장면이다. 끝까지 항복을 않고 버티던 일본에 원자폭탄 두 발을 터트려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고 마침내 세계 2차대전의 종지부를 찍게 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오펜하이머였지만, 1950년대 미국 전역을 강타한 매카시즘 광풍 앞에선 그도 무사하지 못했다.

매카시즘이란 상원의원이던 조지 매카시가 1950년경부터 소련의 사주를 받은 공산주의자들이 미국 정부를 포함한 미국의 모든 분야에 침투해 있다고 선동하여, 미국 내 여러 인사들에 대한 조사와 청문회가 이루어졌고, 이로 인해 많은 정치인, 언론인, 군인, 교수 등이 공직에서 추방되거나 구속된 일련의 사태 혹은 사회현상을 일컫는데, 오펜하이머도 이런 청문회에 소환된 것이다.

1954년에 열린 청문회의 오펜하이머 혐의점은 미국 내의 공산주의자와 교류가 있었다는 거였다. 평소 오펜하이머에 앙심을 품고 있던 원자력 위원회의 ‘루이스 스트로스’라는 인물이 오펜하이머에게 공산주의자이자 스파이라는 누명을 씌웠는데, 솔직한 성격의 오펜하이머가 일부 불리한 증언을 인정함으로써 결국 그는 원자력 분야에서 퇴출되고 만다.

최근 국내에도 매카시즘 광풍이 불고 있다. 국방부가 국방부 청사와 육군사관학교에 세워져 있는 독립투사 홍범도 장군(1868~1943)의 흉상을 옮기겠다고 하면서 가열되고 있다. 항일 독립운동 역사상 최대성과로 꼽히는 봉오동, 청산리 대첩을 진두지휘한 선생이 갑자기 매카시즘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 배경을 조명해 보자.

양 대첩 후, 선생은 독립군 부대를 이끌고 일본군 간도토벌대를 피해 1921년 1월 러시아령 자유市(러시아명 : 스바보드니, ‘스바보다’가 자유라는 뜻임)로 들어갔는데, 이는 중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한인 부대를 통합하고 볼셰비키 정부의 지원을 받음으로써 항일전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결한 한인 부대의 통솔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졌고, 마침내 유혈충돌까지 빚어졌다. 이를 ‘자유시사변’이라 부르는데, 이후 독립군은 뿔뿔이 흩어졌고 독립군의 투쟁역량은 크게 훼손되었다. 자유시사변 이후 선생도 더 이상의 항일무장투쟁을 접고, 연해주 지역의 한인 동포들의 권익 보호에 힘쓰다가, 1937년 9월 스탈린에 의한 한인 강제 이주정책에 따라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했고, 거기서 생을 마감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고, 2021년에는 유해가 봉환되어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국방부에서는 선생의 자유시에서의 행적을 트집 잡고 있다. 볼셰비키 공산당에 가입하고 볼셰비키 혁명군의 계급을 단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주적이 북한 공산당인데 공산당 전력이 있는 인사의 흉상을 국방부와 육사에 세울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우리 주적은 일본이었다.

한국전쟁 때 북한 인민군과 중공군에 대항하여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 중 첫손 꼽히는 이가 백선엽 장군이다. 장군은 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 간도특설대에 복무하며 독립군을 토벌하는 데 앞장섰던 인물이다. 현재 보훈처에서는 그의 친일 행적을 지우고 있다. 친일과 친공산당 의혹 양쪽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물이 또 있다. 바로 대한민국을 빈곤국가에서 선진국으로 탈바꿈할 수 있게 초석을 깐 박정희 전대통령이다. 그 또한 만주군관학교를 거쳐 만주군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고, 해방 후에는 남로당에 연루된 혐의로 군복까지 벗었던 적이 있었다.

오펜하이머를 모함했던 루이스 스트로스는 1959년 상무장관 인준청문회 때, 오펜하이머에 대한 무고 혐의가 드러나 인준이 무산된다. 반면에 오펜하이머는 1963년 당시 대통령인 린든 존슨으로부터 ‘엔리코 페르미 상’을 수상하며 그의 명예는 회복된다.

우리나라는 자타가 인정하는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선진국이란 다양성이 조화롭게 공존하고 존중되는 국가를 의미한다. 군부독재정권 시대도 아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70년 전의 매카시즘 광풍이 불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몇 자 적어봤다.


전재영 칼럼 코렐테크놀로지(주) 대표이사·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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