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울산제일일보
뒤로가기
전재영 칼럼
물(水) 이야기
2023. 08. 01 by 울산제일일보

‘天道無親(천도무친) 天地不仁(천지불인)’. 얼마 전 폭우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던 날, 중국의 고전(古典)에 밝은 한 지인이 SNS로 보내준 문구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유명한 글인데, ‘하늘의 뜻이란 건 없으며, 자연은 자비롭지 않다.’쯤으로 해석된다. 즉 느닷없는 폭우로 뜬금없이 인명을 앗아간 자연의 무심함을 고전에서 인용한 듯하다.

이렇듯 무심하기도 하고 때로는 공포스럽기도 한 ‘물’은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생명체의 근본이다. 지구상에 생명체가 탄생하고 번성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필수조건이 물이었다. 다만 지구에 존재하는 물의 근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학설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물이 외계에서 왔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로, 지구에서 떨어져 나가 생긴 달에는 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을 잔뜩 머금은 혜성이나 소행성이 지구 중력에 이끌려 지구와 충돌하거나 스쳐 지나가면서 지구상에 물을 공급했다는 설(設)이다. 노아 때의 대홍수도 이러했을 거라는 우스개 설도 있다.

또 다른 학설은 지구가 생겨날 때부터 물을 품었다는 주장이다. 십수억 년의 혼돈(chaos)을 거치며 생성된 다량의 물이 지구 내외부에 처음부터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들의 진위를 가르려면 지구와 유사한 태양계의 행성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선 지구와 비슷한 크기의 행성인 금성과 화성을 보면, 먼 과거엔 물이 흘렀던 흔적이 있으나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화성의 표면 탐사선이 화성 여러 곳을 다니며 탐사를 하고는 있으나 아직 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화성은 ‘스페이스 엑스’사의 일론 머스크뿐 아니라 많은 과학자로부터 장차 인류가 이주해서 살아야 할 행성으로 꼽히는 ‘테라포밍(terraforming, 地球化)’의 대상인데, 테라포밍의 필수조건이 물의 존재다. 화성의 극지방 지하에 다량의 물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니 기대해보자.

목성, 토성, 천왕성은 지구보다 훨씬 커서 ‘목성계 행성’이라 불리는데, 지구와는 거리가 너무 멀고, 태양의 광량(光量)도 너무 적어서 화성보다는 관심이 적었다. 그러나 보이저 1, 2호기가 목성계 행성에 근접하여 수많은 사진과 탐사자료를 보낸 이후에 관심이 급격히 높아졌다. 토성의 제일 큰 위성인 ‘타이탄’에서 물과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토성 탐사선인 ‘카시니-허위헌스’호가 발사되었고, 이때 뜻밖의 발견에 과학계가 흥분하게 된다. 타이탄을 탐사하던 중에 토성의 다른 위성인 ‘엔셀라두스’에서 물의 존재를 발견한 것이다.

엔셀라두스는 두꺼운 얼음층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얼음층을 뚫고 나온 물줄기가 우주로 수백 km나 솟구치는 것을 관측했고, 무엇보다 극적인 것은 카시니호를 물줄기 사이로 지나게 하여 성분을 분석해본 결과, 물 이외에도 탄소, 질소, 황, 인 등의 성분도 발견한 것이다. 즉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여건이 충족된 것이다. 얼음층 내부에 액체상태의 물이 있다는 것은 지구의 심해 열수구(熱水口)나 해저화산 같은 게 있다는 것이므로 지구의 열수구 근처에 서식하는 것과 유사한 원시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에 NASA의 제트추진연구소(JPL)에서는 엔셀라두스 위성의 얼음층을 뚫고 내부로 들어갈 뱀 형상의 탐사 로봇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빨리 탐사가 진행되어 결과를 알았으면 좋겠다.

작년 7월 22일부터 지구로 수십만 장의 고화질 우주 사진을 보내주고 있는 제임스-웹 천체망원경(JWST)의 최근 엔셀라두스 관측 사진을 분석한 결과, 무려 1만 km까지 물줄기를 우주에 뿜어대고 있으며, 이로 인해 토성의 고리에 새로운 얼음 띠가 만들어지고 있음을 알아냈다. 십여 억 km 떨어진 직경 500km의 작은 위성을 이렇게 생생하게 관측할 수 있다는 게 참으로 놀랍다.

다시 도덕경으로 돌아와 ‘상선약수(上善若水)’로 글을 맺고자 한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라는 말인데, 만물을 이롭게 하는 물을 최고의 이상적인 경지로 본 말이다. 여기에 한 마디 덧붙이자면, 물은 모든 생명체의 근본이므로 우주를 샅샅이 뒤져서라도 물과 생명의 관계를 밝히는 게 인간이 해야 할 상선이 아닐까 한다. ‘상선지수(上善知水)!’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주) 대표이사·공학박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