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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영 칼럼
7월의 시인, 이육사
2023. 07. 03 by 울산제일일보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하략)’

칠월이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이육사(李陸史)의 시, ‘청포도’이다. 이육사의 본명은 원록(源綠)으로 1904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소싯적부터 조선의 독립에 뜻을 두어, 1925년에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하면서 평생을 조선과 중국을 오가며 독립운동에 매진하다가 1944년 해방을 1년 앞두고 중국 베이징에서 옥사했다. 그의 나이 만 39세였다. 이육사의 생애에 대해서는 본보의 필진 한 분이 예전에 상술한 바 있어, 이 글에서는 다른 관점에서 선생을 돌이켜보고자 한다.

다들 알다시피 선생은 1927년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3년형을 받고 첫 투옥 되는데, 이때 그의 수인(囚人) 번호가 ‘264번’이어서 호를 ‘육사(陸史)’로 지었다고 한다. 출소 후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베이징 대학에서 수학하는 한편, 중국의 곳곳을 돌며 여러 독립운동단체에 가담하여 독립투쟁을 벌였다. 이런 와중에도 중국의 유명 문인인 루쉰(魯迅)과 교류하며 문학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1933년 귀국하면서 이때부터 시작(詩作)에 전념하며 여러 작품을 잇달아 발표했다. 1934년부터는 신조선사 등의 언론기관에 종사하면서 시 외에 평론, 번역, 시나리오 등을 쓰기도 했다. 1937년에는 신석초 등과 시 동인지인 ‘자오선’을 발간했으며. 이를 통해 ‘청포도’, ‘파초’ 와 같이 은유적이면서도 서정이 풍부한 시들을 발표했다. 이런 작품 활동은 1941년까지 계속되었고, 이때 짧은 생애의 후기 작이라고 할 수 있는 ‘광야’와 ‘절정’이 발표되었다.

이후 다시 중국을 오가며 독립투쟁을 벌이다가 체포되어 베이징에서 생을 마감한다. 해방 후인 1946년에 동료 문인들에 의해 유고시집인 ‘육사시집’이 발간되었고, 이 시집의 발문에 그의 동생 이원조는 이렇게 썼다. “실로 그 발자취는 자욱자욱이 피가 고일 만큼 신산하고 불행한 것이었다.”

필자가 문득 선생을 떠올린 까닭은 7월이 된 까닭도 있지만 거리에 널려 있는 현수막의 민망할 정도로 낯 뜨거운 글귀들을 보면서였다. 이는 단순히 현수막에 그치지 않고 TV, 신문 등에도 넘쳐난다. ‘우리나라의 국격과 민도가 요것밖에 안 되나?’ 하는 자괴감이 몰려온다. 정책을 세우고 현안을 검증하는 건 안중에도 없고, 서로 흠집 내기에 열중하고 수시로 말을 뒤집는 꼬락서니가 혐오를 넘어 구역질이 날 지경이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하바리 친일변절자들이 떠오른다. 선생은 짧은 생애에 수많은 옥고를 치렀음에도 변절은커녕 독립에 대한 믿음을 한 결같이 고매(高邁)하게 지켰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고도로 승화되고 은유적인 표현으로 시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여 읽는 이의 애국심이 밑에서부터 자연스레 올라오게끔 한다.

맺는 글로 선생의 시조 한 편을 소개한다. 참으로 애절한 사랑시(戀詩)다. 혹자는 ‘39년이라는 짧은 생애에 17번이나 옥살이를 한 이육사의 작품이라는 것을 상기하면 범상한 연시로만 읽히지는 않는다.’라고 하지만, 육사에게도 청춘이 있었고 연모하는 이가 있었을지니 그냥 연시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날은 뜨겁고 세상 돌아가는 모습 또한 더 낯 뜨거운 칠월의 밤에 이 시조를 음미하며 잠시나마 부끄러움을 잊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뵈올까 바란 마음 그 마음 지난 바램

하루가 열흘 같이 기약도 아득해라

바라다 지친 이 넋을 잠재올가 하노라


잠조차 없는 밤에 촉(燭) 태워 앉았으니

이별에 병든 몸이 나을 길 없오매라

저 달 상기 보고 가오니 때로 볼까 하노라’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주) 대표이사·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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