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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영 칼럼
큰 바위 얼굴
2023. 06. 11 by 울산제일일보

요즘 젊은 세대들은 전혀 이해를 못 할 수도 있는데, 필자 소싯적에는 소위 펜팔(pen pal)이라는 게 유행이었다. 편지나 엽서로 모르는 이들과 소통하는 것으로, 필자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영어 실력도 늘리고 해외에 대한 호기심도 충족시킬 겸해서 해외 펜팔을 1년 남짓 했고, 대상은 내 또래 미국 백인 소녀였다.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그 소녀의 이름이 생각난다. 론다(Rhonda)였고, 미국 사우스다코타주에 살던 아이였다. 론다의 고향 자랑 중에 아직도 기억나는 게, 러시모어산에 있는 거대한 조각상이었다.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 네 사람의 얼굴을 웅장하게 새겨놨다며 해당 사진이 들어간 엽서를 보내주었던 기억이 난다.

어린 마음에도 그 규모와 예술성이 대단하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는데, 학년이 바뀌고 교과서에 미국 작가 ‘나다니엘 호돈(Nathaniel Hawthorne)’이 쓴 ‘큰 바위 얼굴’이란 글이 실린 것을 보고 평행이론에 감전이라도 된 듯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오래전에 읽은 글이라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큰 바위 얼굴의 자격에 대해 풍자한 글이었다.

미국의 한 작은 마을에 어니스트란 소년이 살았는데, 이 마을에는 얼굴 모양을 한 큰 바위산이 있었고, 언젠가는 이 바위 얼굴을 한 위인이 나타날 것이라는 전설이 있었다. 어니스트는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되고 노인이 되어가며 네 명의 큰 바위 얼굴 후보를 만나게 된다. 첫 번째 인물은 엄청난 재력가였는데 알고 보니 돈밖에 모르는 수전노였고. 두 번째 인물은 유명한 군인이었는데 들춰보니 냉혈한이었다. 세 번째 인물은 성공한 정치인이었는데 실상은 권력과 명예욕에 찌든 이였고, 마지막 네 번째 인물은 널리 알려진 시인이었는데 팍팍한 현실에 허덕이던 이였다. 그러나 시인은 이내 알아봤다. 어니스트야말로 큰 바위 얼굴이라는 걸.

당시에는 호돈의 글이 론다가 알려준 러시모어산의 석상을 모티브로 쓴 창작물인 줄 알았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서야 두 개의 ‘큰 바위 얼굴’은 별개라는 걸 알게 되었다. 호돈의 글은 1850년에 발표되었고, 러시모어산의 석상은 소설이 발표되고 한참 후인 1927년에 착공하여 1941년에 완성되었으니, 오히려 석상이 호돈의 소설을 모티브로 조성된 게 아닌가 싶다.

러시모어산은 원주민인 ‘수우’족의 성지였다. 수우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거대한 석상을 만든 이유는 벽지 중의 벽지인 사우스다코타주의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숱한 우여곡절 끝에 네 명의 대통령상이 조각되었다. 조지 워싱턴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미국 ‘건국’의 상징이고, 토머스 제퍼슨은 3대 대통령으로 미국독립선언문을 작성했으며 미국 ‘성장’의 기초를 닦은 인물이고,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남북전쟁을 종료시키며 미국 ‘보존’의 토대를 만들었고, 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파나마 운하 추진 등으로 미국의 ‘발전’을 의미한다고 해서 선정되었다.

지금 울산과학기술원(UNIST) 인근에 시비 250억원을 들여 울산의 현재를 이끈 위대한 경제인 에 대한 거대한 흉상을 조성하기로 발표되면서 울산은 물론 전국적인 관심을 끌고 있으며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아울러 올해 하반기에 착공하여 내년에 준공될 예정이고 흉상의 대상인물도 거의 확정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상징물을 세우는 데는 적극 찬성한다. 러시모어산의 석상을 보러 해마다 수백만의 많은 관광객이 몰려오고 있고, 가까운 부산만 봐도 처음엔 경관 및 환경을 파괴한다고 반대가 끊이지 않았던 광안대교가 개통 후에는 부산의 상징물이 되어 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으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드시 짚어봐야 할 것들이 있다. 우선 위치다. 차를 타고 순식간에 지나가면서 보는 걸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시민이나 외지인들이 많이 찾는 대공원이나, 태화강변, 혹은 대왕암 인근에 조성해야 관광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다. 러시모어 석상과 광안대교 모두 오랜 기간에 걸쳐 숙의된 후에 조성되었다. 졸속으로 진행되면 어느 지자체의 초대형 가마솥처럼 애물단지로 전락할 우려도 적지 않다. 위치, 규모, 인물선정 등에 대한 충분한 여론 수렴과 전문가의 검증을 거친 후에 울산만의 독창적인 상징물로 조성되어야 한다. 필자가 참신하게 본 조형물 중의 하나는 남구 왕생로 보도에 깔린 울산 산업역군들의 손바닥 프린트물이다.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주) 대표이사,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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