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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영 칼럼
‘비아레지오 열차사고’를 다시 보다
2023. 01. 08 by 울산제일일보

르네상스의 중심지이자 꽃의 도시로 잘 알려진 ‘피렌체’에서 서쪽으로 조금만 가면 아름다운 해안도시 ‘비아레지오’가 나온다. 그런데 이 도시에서 2009년 6월 29일 자정 무렵, 액화석유가스(LPG)를 싣고 가던 화물열차가 ‘비아레지오 역’에서 탈선하면서 폭발과 화재로 이어지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총 14칸의 화차 중 두 번째 화차가 탈선하자 잇달아 세 대가 탈선하면서 전복되었는데, 하필 철로 주변에 나뒹굴던 철구조물에 LPG 탱크가 찢기면서 LPG 수십 톤이 누출되고 마찰열에 의해 점화되면서 폭발로 이어졌다. 전복되지 않은 탱크도 주변의 열기에 영향받지 않고 압력을 유지하려고 세이프티 밸브로 계속 가스를 내뿜으면서 이 화재는 밤새 계속되었다.

폭발 순간 인근 마을은 폐허가 되었고, 부근 도로를 지나던 차들도 화재에 휩싸였다. 공기보다 무거운 LPG가 바람을 타고 도시 이곳저곳으로 흩어지면서 많은 곳이 불탔고 몇몇 건물은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이 사고로 끝내 32명이 숨지고 26명이 다쳤다.

최근 국내에서도 안전사고가 잦은데 굳이 먼 나라 사례를 든 것은 몇 가지 시사점이 있어서다. 당시 화물열차 운영회사 사장은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우리 책임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성명을 냈고, 당국자들도 연이어 책임을 회피했다. 이 장면은 지난해에 일어난 ‘이태원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사고 후 재난 안전 주무부처 장관이 ‘당일 이태원에는 예년과 비슷한 인파가 몰렸고, 서울 시내 곳곳에서 시위가 있어 경찰력이 분산되었으며, 경찰을 미리 배치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었다’라는 요지로 발언했기 때문이다.

2009년의 열차사고 후 장기간의 원인조사와 법정공방 끝에, 이탈리아 재판부는 2017년 2월, 사고 당시의 이탈리아 철도당국 수장과 철도망 보수책임 회사 사장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징역 7년의 실형을 선고했고, 이로써 사고는 일단락됐다. 이탈리아는 유럽의 선진국으로 불리지만, 크고 작은 열차사고만큼은 중진국을 능가할 정도로 잦다. 원인조사를 철저히 한다는 것이 중진국과 궤를 달리할 뿐이다. 필자는 옛날 독일 ICE 고속열차 사고(‘에셰데 사고’)를 조사하면서 그 자세함에 경악을 금치 못한 적이 있었는데, ‘비아레지오 사고 조사’ 역시 그에 못지않았다.

사고의 직접 원인은 탈선한 두 번째 화물차 차축의 부러짐에 있었다. 조사 과정에서 놀라운 일이 계속 드러난다. 문제의 차축은 1970년대에 동독에서 제작된 것으로, 무려 40년 가까이 사용한 낡은 기계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운행 과정에 제대로 된 안전진단을 한 번도 받지 않은 사실이다. 이 차축은 통일 후 독일 전역에서 사용되다 유럽이 유럽연합(EU)으로 통합되면서 유럽 전역에서 사용됐다.

문제는 안전진단인데, 이 화차가 운행한 적이 없는 옛 동유럽국가의 이름 없는 검사소에서 안전진단을 받았다고 했으나 치밀한 조사 결과, 제대로 된 진단을 한 번이라도 받았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유럽 통합 직후의 제도의 허점을 틈타 각종 진단검사를 회피한 것이 사고의 근본 원인이었던 셈이다.

이 또한 울산지역에 묻힌 각종 지하배관에도 투영된다. 일반 시민은 다 똑같은 지하배관으로 알고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가스·유류관은 산업부가, 화학배관은 환경부가, 위험물질배관은 행안부가 관리하고 있다. 설치·운영에 관한 법규와 절차도 부처별로 제각각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지하에 나란히 묻힌 여러 배관 중 어떤 건 주기적으로 진단하고, 나머지는 방치하는 것이 실상이다. 문제는 울산의 지하배관이 전국에서 가장 많고, 가장 오래됐고, 인구밀집지역에서 가까이 있다는 점이다.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주) 대표이사/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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