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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학의 역사산책
‘3·1운동’ 유감
2020. 02. 24 by 울산제일일보

며칠 후면 삼일절이다. 1919년 3월 1일, 우리 조상들이 나라의 독립을 선언하고 만세 의거에 나선 역사적 사건을 기리는 날이다. 우리 조상들은 그 해 4월 11일 대한민국 헌법을 공포하고 임시정부를 수립한 후 만주와 중국 지역에서 광복군을 양성하여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도 벌이는 등 총칼을 들고 목숨을 건 대일 ‘민족 투쟁’을 벌였다.

그런데, 현 교과서에는 이런 ‘민족 투쟁’을 3·1운동, 독립운동, 의병운동 등 ‘운동’이라고 부르면서 총을 들고 조준사격 연습하는 의병들의 사진을 게재하고 있다. 총 들고 운동한다는 말은 어딘가 어색함이 느껴져 잠시 산책한다.

‘운동’이란 단어는 세계적으로 ‘전쟁’으로부터 스마일 운동과 같은 순수 시민활동에까지 쓰이므로 근본적으로 틀렸다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6·25전쟁’을 ‘운동’이라 하지 않듯이 전쟁이나 투쟁과 운동을 같이 생각하지 않는다.

교과서에서도 ‘전쟁’은 여-수 전쟁, 나-당 전쟁, 6·25 전쟁 등 외국과의 무력충돌을 말하며, 병자호란, 임진왜란 등 ‘란’이라고도 부른다. 고려 때는 농민 봉기, 이자겸의 난 등 국내적 상황조차 ‘봉기’ 또는 ‘난’이라 표기하고, 삼별초의 대몽 투쟁은 ‘항쟁’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유독 일제의 국권 침탈에 대항하여 싸운 민족 투쟁에서는 한글보급운동, 애국계몽운동 등 순수한 시민운동으로부터 광복군의 전투에 이르는 투쟁적 성격의 여러 활동을 삼일운동, 의병운동, 무장독립운동이라고 하여 모두 ‘운동’이라 표현하고 있다. 특히 광복군이나 농민군, 의병은 조직화된 군(軍)이거나 병(兵)으로서, 일본군에서는 의병들을 대상으로 ‘남한 대토벌작전’을 전개했는데, 이에 대항한 우리의 의병들은 총을 들고 ‘운동’을 하고 있었다는 말이니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표현이다.

이때의 ‘운동’이라는 표현은 ‘민족 투쟁’이라는 본질을 오도하고 ‘일본이라는 국내의 조선 지방에서 일어난 작은 소란행위’ 정도로 보는 조선총독부 인식의 잔재라는 냄새가 짙게 난다. 그러면서 지금도 그렇게 부르는 데 대해서는 신친일파 등 어떤 보이지 않는 검은 손이 작용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의문도 들면서 순국선열들의 목숨 건 애국활동을 비하하는 역사적 범죄라고 볼 수밖에 없다.

더구나 ‘3·1운동’이라는 말은 교과서만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나라 헌법 전문에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하여 ‘3·1운동’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에 따라 교육부의 교육과정, 중·고 교과서 집필기준, 그리고 편수자료에까지 ‘3·1운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도록 함에 따라 초·중·고 모든 교과서에서 똑같이 사용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헌법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 된다.

2016년에 한 방송국에서 소개한 ‘1995년 일본 방송국의 「슬픈 테러리스트의 진실-안중근」’에서 안중근은 (폭탄 투척이) 독립전쟁의 일부라고 하여 ‘전쟁’이라고 표현했는데, 일본 방송국은 ‘테러’로 평가한 것이다. 안중근 성장과정 설명에 나오는 ‘동학당의 난(東學黨の亂)’이란 일본 방송국의 자막을 우리 방송국에서는 ‘동학농민운동’이라고 번역하여 방영했다. 우리 언론인들도 용어 사용에서 일본 언론보다 더 주체성이 떨어지는 무감각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는 바꿔져야 한다. 국회에서는 헌법 전문의 ‘3·1운동’이란 용어를 고쳐야 하고, 교육부의 지침과 모든 교과서에서는 민족투쟁이었던 ‘운동’이라는 용어를 ‘겨레 싸움’ ‘의거’ ‘투쟁’ 등 상황에 적합한 용어로 바로잡아야 한다.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으니 그렇게 하지 않는 정당이나 후보들에게는 표를 주지 않는 국민들의 자각이 필요하다. 울산에서부터 그런 바람이 일어나기를 기대해본다.

박정학 역사학박사, 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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