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울산제일일보
뒤로가기
박정학의 역사산책
1910년대에 웬 광복?
2020. 02. 18 by 울산제일일보

울산사람 박상진 광복회 총사령은 1910년대에 일제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판사시험에 합격해 평양재판소 판사로 발령이 났으나 ‘독립운동가를 내 손으로 단죄할 수 없다’면서 판사 취임을 거부하고 무장 광복투쟁에 참여하신 의인이다. 이미 재평가를 주장한 바 있지만, 오늘은 ‘광복’에 초점을 맞춰 그분의 앞선 생각을 산책해보고자 한다.

사전을 찾아보면, ‘광복(光復)’은 ‘빼앗긴 주권을 도로 찾음’이라고 나온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대한제국이 일제에 의해 망했다고 인정하고 ‘독립’을 해야 한다면서 의병을 일으켜 독립투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상진 의사는 1913년에 비밀결사단체인 ‘조선국권회복단 중앙본부’를, 1915년 7월 15일에는 ‘대한광복회’를 결성하고 총사령으로 취임했다. ‘대한제국은 망하지 않고 국권만 빼앗긴 상태’라 보고, 그 국권을 되찾는 투쟁을 벌인 것이다. 3·1만세의거와 대한민국 건국, 임시정부 형성이 1919년에 가서야 일어난 이유와 연결되는 매우 앞선, 바른 생각이었다.

1965년 6월 11일 서명한 한일 기본조약 2조에는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되어 있다.

1910년 한일병탄조약과 1905년 을사늑약 등이 무효라는 것이다. 일본은 자신들의 불법적 식민지배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라는 구절을, 2차 대전에서 패했으므로 ‘이제 무효화되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한·일 및 국제정치 학술대회에서는 국제정치학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그 조약들이 불법적인 조약이라고 밝혀졌으므로 아예 그 조약 체결 당시부터 ‘이미 무효’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다.

이는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었다’고 하는 현재의 헌법 전문과도 연결된다. 법통(法統)은 고려, 조선 등 나라의 이름을 말하므로 대한민국 앞의 나라이름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이고, 그 앞은 대한제국이라는 말이 된다. 국권은 강탈당했지만, 대한제국,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있었다고 보는 시각이다.

광복 이전을 대한민국임시정부 시대라고 한다면, 1910년 강제병합부터 대한민국 헌법을 반포하고 임시정부를 세운 1919년 4월 11일까지는 어떻게 되느냐는 의문이 나올 수 있다. 1910년의 병탄조약이 유효하다면 대한제국은 없어지고 일제강점기가 된다. 그러나 그 조약들이 무효라면 대한제국은 망하지 않고 국권(통치권)만 강탈당한 것이 된다. 그러다가 1919년 2월에 광무황제가 승하함으로써 대한제국도 끝이 났다고 보고, 3월 1일에 독립을 선언한 데 이어 4월 11일에 헌법을 반포하고 ‘대한민국으로 독립’을 했다. 그러나 국권을 찾지 못했으니 임시정부를 세운 것이다.

광무황제가 1914년 12월 독일 황제에게 보낸 친서 말미에는 ‘내가 쓰는 국새를 빼앗겨 내 호(號)를 새긴 도장을 쓸 수밖에 없다’는 구절이 있다. 이로 미루어 1907년 퇴위 후에도 대한제국의 옥쇄를 찍은 외교문서를 발행하는 등 실질적인 대한제국의 황제로 활동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로 대한제국이 1919년까지 이어졌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이기도 하다.

헌법 전문에 따른 국통의 맥을 다시 정리하면, 1905년의 을사늑약과 1910년의 병탄조약이 무효이므로 대한제국은 1919년 2월까지 유지되었고, 4월 11일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임시정부를 형성하여 끈질긴 광복투쟁을 벌인 결과 1945년 8월 15일에 광복을 하여 1948년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것이다. 1915년 박상진 의사가 광복회를 조직했다는 것은 바로 이런 국통 인식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앞섰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1948년 대한민국 건국절 운운하는 사람과 1910년부터 1945년까지를 일제 강점기라고 부르는 국사교과서가 있고, 많은 국민들이 대한제국은 1910년에 망했다고 생각한다. 광복 75주년이 되는 올해에는 울산제일일보 독자 여러분부터 이런 비주체적인 역사인식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기대한다.



박정학 역사학박사·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