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울산제일일보
뒤로가기
전재영 칼럼
테헤란의 여인
2020. 01. 20 by 울산제일일보

이란의 관문인 수도 테헤란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이맘 호메이니 국제공항’을 거쳐야 한다. 우리나라의 인천공항만큼이나 도심부에서 남쪽으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황야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서 북쪽 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처음 가는 사람들에겐 참으로 스펙터클하다.

필자도 처음 갔을 때는 저 멀리 보이는 테헤란 시내 위로 큰 먹구름이 드리운 줄 알았다. 수분 후 알고 보니 먹구름이 아니었다. 해발 삼천 미터가 넘는 엘부르즈 산맥이 테헤란 시에 바짝 붙어서 서울의 북한산은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위엄을 뽐내고 있는 것이었다. 고도가 높다 보니 거의 만년설에 가까운 지역이 많고 스키장도 꽤 있다고 했다.

테헤란 북쪽 산록지구는 산맥에서 흘러온 계곡물이 넘쳐나고, 주변으로는 아름드리나무가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울창하게 뻗어있으며, 그 사이로 고급 레스토랑과 호화주택들이 즐비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조금 남쪽 다운타운으로 내려오면 일상적인 중동지역의 건조한 환경이 나타난다. 다만 자동차들이 넘쳐서 늘 교통체증이 발생하는 게 다소 다를 뿐이다. 여기서 남쪽으로 좀 더 내려오면 황량한 건조지역이 나타난다. 우리나라 제주도의 수직적 식생대의 변화가 테헤란에서는 남북으로 수십 킬로미터 이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중동 국가를 여러 곳 가봤지만 이란은 매우 특이한 곳이란 생각이 든다. 역사와 민족 등 일반적인 관점을 차치하더라도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와 참여도가 다른 중동 국가들과 뚜렷이 구분될 정도로 높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이슬람 국가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척도는 신체를 얼마나 가리는가로 판단한다고 하는데, 이란의 테헤란 여성들은 신체를 최소한으로 가린다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의 스카프에 해당되는 히잡으로 두발만 살짝 가리기 때문이다. 그나마 자세히 보면 검정색 히잡은 눈을 닦고 봐도 찾을 수 없고, 젊은 여성들은 예외 없이 컬러풀하고 다자인이 가미된 히잡을 쓰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젊은 여성들은 몸에 딱 붙는 청바지를 입고, 상의는 티셔츠나 캐주얼 정장으로 차려입는다. 이렇게 비교되는 외모 이상으로 사회참여는 더 대단했는데,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에는 남성보다 더 많은 여성들이 길거리를 메운다. 히잡을 두른 것만 제외하면 여타 서방국가와 다를 바가 없었다.

지금은 잘 모르지만 당시 이란을 방문했을 때, 우리 대한민국의 위상은 실로 대단했다. ‘대장금’, ‘주몽’을 비롯한 한국 드라마가 시청률 80%를 웃돌며 이란을 강타한 직후여서인지, 한국 남성이 거리에 나타나기만 하면 뭇 이란 여성들이 시선을 집중시키곤 했다. 우리 일행이 차를 타고 가면 이란 여성들이 탄 차가 우리 차를 앞뒤, 좌우로 에워싼 채 손을 흔들며 추파를 던지는 일은 예사였다.

이런 유혹 아닌 유혹에도 아랑곳없이 우리 일행은 꿋꿋이 할일만 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가 접촉했던 이란 회사는 계열사가 십여 개나 되는 제법 큰 회사였다. 두어 차례 방문해서 미팅만 십여 차례, 지방 출장도 여러 차례 다녔다. 이 회사는 특히 여성 취업률이 대단했는데, 전체 직원의 2/3 이상이 여성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직원 수만 많은 게 아니었다. 회사 경영에도 깊숙이 관여한 탓인지 미팅 시에는 항상 다섯 명 중 두 명이 여성이었다.

그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와는 공식·비공식으로 만난 횟수가 십여 차례에 불과했을 뿐이지만, 십년이 지난 지금도 불쑥불쑥 추억 속에서 소환되곤 한다.

그녀의 자리는 처음 미팅 때부터 내 옆 자리였다. 몸을 움직여 다음 자리로 갈 때도 그녀의 자리는 늘 내 옆 자리였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명함이 없어서 지금도 그녀의 정확한 직위와 직책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늘 지근거리에서 나를 지켜주려고 애를 썼다. 레스토랑에서 식사할 때는 옆자리에서 주문을 도와주었고, 음식 먹는 방법도 일일이 가르쳐 주었다. 신걸 너무 좋아해서 레몬즙을 스푼 가득 짜서는 맛있게 마시던 그녀의 기억은 지금도 붙박이로 남아있다. 테헤란을 벗어나 조금 먼 데로 갈 때 그녀는 나를 옆자리에 앉혀놓고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그것도 해맑게 웃으면서 들려주었다.

나름 꿈같은 시간이 지나고 작별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였다. 그녀는 여러 사람이 다 있는 자리에서 간밤 꿈 이야기를 하며 뜬금없이 나를 화제의 주인공으로 삼았고, 좌중을 배꼽을 잡게 했다. “언제 다시 오느냐?”, “같이 가면 안 되냐?”, “나를 초청해 달라”며 나를 난처하게 만들던 테헤란 여인. 하지만 그때는 아무 말도 못하고 딴 짓거리만 하던 기억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다.

올 초부터 트럼프의 솔레이마니 암살로 야기된 중동 정세가 몹시 흉흉한 것 같다. 특히 이란군의 우크라이나 여객기 오폭으로 이란 내에서는 ‘독재 타도’, ‘민주화 회복’의 열기가 뜨겁다. 이란 뉴스를 접할 때마다 떠오르는 것이 있다. 금발머리에 하늘색 히잡을 두른 초록빛 눈동자의 그녀다. 그녀가 더 자유로운 세상에서 좀 더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기원한다.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주) 대표이사·공학박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