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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학의 역사산책
무명의 광복투사들에게 감사하며
2019. 11. 13 by 울산제일일보

최근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등 동유럽 세 나라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여행 중에 가장 진하게 느낀 감정은 우리 조상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었다.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갖추고 대중교통문화의 선진국이 되어, 내가 그런 나라들을 뒤처진 나라라고 여기며 여행할 수 있게 만들어준 것은 오직 우리 조상들 덕분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초에 자발적으로 나선 수많은 민초들의 희생에 대해 보훈을 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 김형민 PD(SBS 프로덕션)가 정리한 ‘임시정부 안살림꾼 정정화의 절규’라는 부제가 붙은 「너희가 임시정부를 아느냐?」라는 소책자를 접하면서 특히 이름 없는 분들의 광복 투쟁에 감사하는 마음이 강하게 들어 산책을 하고자 한다. 역사 시간에 김구, 이승만, 이회영, 신채호, 홍범도 등등 많은 광복투사들의 이름은 들었지만, 이런 민초들의 희생적 노력이 보태지지 않았다면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제가 남작 작위까지 주었으나 3·1 항쟁 후 이 모두를 팽개치고, 독립투쟁에 헌신한 동농 김가진의 며느리로서 27년간 임시정부의 일원으로 활동한 정정화 여사의 말로 재정리한 것이 이 소책자다. 그 내용 중에 신의주 비밀연락책이었다는 이세창과 배를 타고 압록강을 건너면서 들었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내레 솔직하게 한 마디 하갔는데, 젊은 아주머니레, 더구나 귀골로 산 사람이 이런 일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시다. 독립운동을 하는 유명한 사람들이레 하나같이 다 험악한 일을 하는 건 아니디요? 기렇디요?” “독립운동은 나 같은 놈이나 하는 일인 줄 알았거든.”

그러면서 정 여사는 그 후 임시정부의 비밀연락망이 일제 경찰에 붕괴되면서 그 구수한 평안도 사투리의 이세창 씨도 체포됐다고 들었으며, 그 뒤로는 아무도 그를 본 사람이 없고,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후손은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이어 그는 “이세창 씨는 대체 무슨 덕을 보았다고 그토록 ‘위험한’ 일을, ‘험악한’ 활동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귀골로 산 사람들’ 걱정을 하셨는가?”라고 독백을 했다.

저자는 여기에 보태어 “알아두십시오. 여러분이 위인전에서 읽었던 쟁쟁한 독립투사들, 그분들 말고도 그분들의 수십 배, 수백 배 되는 사람들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심지어 어떻게 살았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은 채, 후손들의 기억으로부터도 배제된 채, 여러분이 오늘날 우리말을 쓰고 우리글을 읽고 아무렇지도 않게 활보하는 자유를 위하여 살다 죽어갔다는 것을….”이라고 강조했다.

이 소책자에는 이 밖에도, 청산리 전투에서 몇 날 며칠 먹지 못하고 싸우는 독립군 입에 주먹밥이라도 물리려고 광주리를 이고 산을 오르다 일본군 총에 죽은 아주머니 이야기, 일본군을 교란시키기 위해 포탄이 떨어질 때까지 꽹과리를 치고 징을 울렸다는 풍물패 이야기도 실려 있었다. 또한 그 와중에 기관총을 몸에 묶고 총알이 떨어질 때까지 일본군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하다가 집중사격의 대상이 되어 돌아가신 최인걸 이야기, 김 구 선생의 어머니와 부인이 나라를 먼저 걱정하신 이야기, 안병찬 변호사 이야기도 같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 필자는 “이런 빛나는 사람들을 밝히는 작업이 중요한데, 뼈가 부서지고 살이 찢기고 피를 토해 대륙의 흙먼지를 적시며 살아갔던 그 허다한 사람들을 여러분들은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물론 그분들이 여러분더러 자신들을 알아주기를 바라서 싸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아셔야 합니다.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말입니다.”라고 호소했다.

내가 동구 3국을 후진국으로 생각하며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울러 미래의 우리 후손들을 위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더 좋은 역사산책을 통해 이런 분들을 더 많은 독자들에게 알리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이번 산책을 마친다.

박정학 역사학박사·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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