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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산책
독도에 발 디딘 운 좋은 사나이
2019. 10. 29 by 울산제일일보

태풍이 잦은 2019년에 독도에 당당히 두 발을 디뎠다는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필자는 10년 전 독도까지 갔다가 뱃멀미만 하고 섬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지난 8월 말은 동해바다가 불안한 시기여서 기대를 많이 하지 않았다. 울산~포항 고속도로 개통으로 한결 가까워진 포항여객터미널에 승용차로 쉽게 도착했다. 파고가 예사롭지 않아 항구의 점방에 들러 멀미약을 울릉도와 독도 것까지 구입했다.

승선한 지 1시간 정도 지나니 파도는 점점 높아지고 일부 승객은 통로 바닥에 누워 견디고 있었고,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멀미약을 먹은 필자도 멀미기가 점점 심해져 2시간 후부터는 통로에 드러눕는 신세가 되었다.

배가 도동항에 접안하자 일행은 버스를 타고 울릉도농업기술센터로 이동했다. ‘독도 아카데미’는 대강당에서 시작되었다. 강의는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땅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 일본인의 침략을 막은 사례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첫날 일정이 끝나갈 즈음 필자는 ‘그래도 멀미까지 참아가며 동해의 한 점 섬으로 왔는데’ 하는 생각에 울릉도의 최고봉인 성인봉을 꼭 오르고 싶었다. 버스기사에게 부탁해서 숙소를 성인봉 산행 초입부에 잡았다. 마침 준비해 간 헤드랜턴이 있어 혼자서 성인봉 산행에 도전했다.

전날 내린 비로 길은 다소 미끄러웠으나 그래도 산행 시작 1시간까지는 밝음이 남아있어 억새와 송엽국 정도는 볼 수 있었다. 어둠이 내린 뒤부터는 등산로 이정표에 의지해 앞만 보고 오르고 또 올랐다. 밤 8시 29분, 마침내 성인봉(984m) 정상에 도착했다.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주고, 하늘의 별과 달과 멀리 동해에 점점이 떠있는 배들이 한여름 밤의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 드디어 독도로 가는 날이다. 전날 밤 성인봉에서 했던 기도가 오늘 이루어질까? 설레는 마음으로 독도 가는 배에 올랐다. 항구까지 같이한 버스기사와 해설사도 성공적인 입도를 빌어주었다. 독도에 발을 디딜 확률은 고작 30%. 이 정도 파고에 입도 가능성은 얼마나 될지 조심스레 점도 쳐보았다.

배가 항구를 벗어나자 파도가 심상치 않았다. 그래도 배만 닿으면 기어이 내리리라는 각오가 배를 탄 모든 사람들의 이마에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선장의 목소리가 방송을 타고 흘러나왔다. 힘들어도 배를 접안시키고 입도를 시도하겠다는 것이었다. 외(外)방파제가 없어 겨우 배를 묶기는 했지만 하선하는 곳은 계속 좌우로 요동쳐 승무원의 도움으로 한 명씩 조심조심 내려야 했다.

우리 땅 독도는 이렇게 해서 첫발을 디뎠다. 내리는 순간 대단한 독립투사라도 된 듯 애국심이 솟아나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평소의 학습효과? 아니면 우리 것에 대한 본능적인 애착? 일본×에 대한 적개심? 우리는 환호했고 단체사진도 찍었다. “아이 러브 독도!”,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외치면서!

이날 저녁, 독도에 대한 열띤 토론이 울릉도 바닷가의 신선한 공기를 갈랐다. 이후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운 좋은 사나이는 ‘독도는 우리 땅’의 가수 정광태를 만나는 행운까지 얻었다. 우리는 어제 만난 사람처럼 반가워했고 사진도 같이 찍었다. 다음날 저녁 도동항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출연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다음날은 오후에 포항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음악회 참석은 하지 못했다. 문득 그의 노랫말이 떠올랐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 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 땅…”

마지막 날, 독도박물관에서 독도의 역사를 되새기고 울릉도의 자연을 일주도로에서 감상하면서 아쉬운 2박3일간의 ‘독도 아카데미’를 정리했다. 성인봉 등정, 독도 입도, 정광태 가수와 만남이란 성과를 거둔 행운의 사나이는 울릉도 사동항을 떠나 포항으로 향했다. 2m가 넘는 파도가 배를 춤추게 했다. 그래도 행운과 열정이 만나게 해준 성인봉과 독도, 가수 정광태는 무한충전의 배터리로 다가왔다.

윤주용 울산시농업기술센터 소장, 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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