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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학의 역사산책
단합대회로서의 제사에 대한 재고
2019. 09. 17 by 울산제일일보

며칠 전 민족명절인 추석을 지냈다. 엄청난 숫자의 귀성인파로 사건·사고도 많았다. ‘그래도 간다’며 고향으로 가는 인파가 그렇게도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집에서 쉬면서 TV를 보다보니 소위 명가나 종가를 포함해서 추석 차례를 지내지 않는 집안이 많이 늘어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집에서 차례를 지내지만 이번 추석부터는 ‘제사’ 형식을 취하지 않기로 했다. 과연 이 조치가 옳은지 한 번 짚어본다.

명철 차례는 절사(節祀)라고 하는 약식 제사 형식을 취한다. 따라서 매우 간단하게 지내게 되어 있지만, 우리 집에서는 아버지 때부터 기제와 똑같이 제사로 지냈다. 기본적으로 제사의 목적과 취지를 정확히 알아야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도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자료를 잠시 훑어본다.

제사의 원형은 매년 상달이나 삼신을 맞이하는 3월 16일 대영절에 하늘에 제사지내는 제천(祭天)행사였다. 역사기록으로 보면 제천행사는 중국보다 우리나라가 종주국이다. 그 목적과 취지를 알 수 있는 기록을 하나 소개한다. 『환단고기』 중 「단군세기」의 11세 도해 단군 조의 기록이다.

“46년(서기전 1846년) 3월에 산의 남쪽에서 술과 음식을 갖추어 올리고 치사를 드리며 삼신께 제사를 올렸다. 그날 밤 특별히 널리 술을 하사하시어 여러 사람들과 더불어 술잔을 돌려가며 술을 마시면서 여러 가지 재주들을 관람하셨다. 이 자리가 끝나자 마침내 누각에 오르셔서 천부경에 대해서 논하시고 삼일신고를 강연하신 후 오가를 돌아보고 ‘이제부터는 살생을 금하고 방생하며 옥문을 열고 떠도는 사람에게 밥을 주어 살도록 하며 사형 제도를 없애노라’고 말씀하셨다. 이에 모든 사람들이 이를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삼신에 대한 제사는 일종의 천제다. 술과 음식을 준비하여 천제를 올리고 밤이 되어 임금이 백성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여러 가지 재주(요즘의 서커스와 같은 유희)들을 관람한 후 천부경을 논하고 삼일신고를 강연했으며, 살생을 금한다면서 사형 제도를 없앤다는 발표를 했다.

내용으로 보아 제사의 목적이나 취지가 드러난다. 술과 음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열게 하는 역할을 한다. 낮부터 술을 마셨으니 밤에는 거나하게 취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백성들과 함께 유희를 관람했다. 마음이 하나 되게 만드는 행동으로 보인다. 그리고 사형 제도까지 없애면서 살생을 금하는 것은 커다란 잘못도 용서하는 과정이다. 더군다나 여기에는 안 나오지만, 다른 제천행사 기록에는 화백회의와 국중대회를 열었다. 지금의 국회 내지 시도지사 회의와 전국체전 비슷한 행사였다. 이 모든 것이 지역 정부(부족단위)와 국민들의 단합을 위한 절차였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이 「단군세기」를 지은 행촌 이암의 「태백진훈」에는 ‘제사위일(祭祀爲一)’이라고 하여 ‘제사는 하나 됨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제천행사가 마을의 동제, 개별 가문의 제사와 차례로 이어지므로 집안에서의 제사도 가족과 친지들의 단합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 단합행사였던 것이다.

이것이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차리는 음식이나 절차 등 형식적인 것이 강조되면서 요즘은 단합보다 힘들어 ‘단합을 해치는 행사’가 되어버린 것 같다. 이번 추석날 오후에 테니스 동호회에서 운동을 하고 인근 식당에 갔더니 가족단위로 온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그러자 동료들이 “오늘 추석이니 집에 먹을 음식이 많을 텐데, 어찌 이렇게 가족단위로 식당에 많이 올까?”하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해주었다. “우리 집에서도 제사 형식을 취하지 않고, 그냥 단합잔치로 하니 집에 음식도 거의 없다. 그리고 집에서 식사하면 집사람이나 며느리들이 음식준비 하느라 고생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황금연휴에 아이들과 놀러가지도 못하고 시가에 와서 고생해야 하는 며느리들의 명절은 단합을 해칠 수 있으므로 제사를 없앤 것이다. 이런 판단이 옳은지 여부는 독자들이 판단해주시기 바란다.



박정학 역사학박사·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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