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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학의 역사산책
지금도 활동 중인 ‘밀정’
2019. 08. 25 by 울산제일일보

신친일파와 관련된 산책을 한 바 있지만, 이번에는 ‘밀정’과 연결시키면서 다시 한 번 산책해보고자 한다.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밀정한테 당할 때는 친구들이나 잘 아는 사람, 심지어 동료들한테 당해요. 그러나 주위의 누가 밀정인지를 알 수가 없잖아요. 독립군이 2천 명 정도 결성됐어도 그 안에 밀정이 한 사람 있으면 그 조직은 와해되는 거죠. 밀정은 그만큼 어떤 반민족 행위보다도 더 악랄한 반민족 행위죠.”

KBS1TV에서 8월 13일과 20일 밤 10시에 2부작으로 방송된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특집 [시사기획 창] 밀정-배신의 기록’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KBS 탐사보도부는 지난 8개월 동안 일본 외무성과 방위성의 기밀문서, 헌정자료실에 보관된 각종 서신, 중국 당국이 생산한 공문서 등 약 5만 장의 문서를 입수, 분석해서 찾아냈다는 밀정 혐의자 895명의 실명도 공개했는데, 그 중에는 독립유공자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랬다. 역사 속에서 나라가 외침이 아닌 내부의 적에 의해 망했듯이 대일광복투쟁 조직에서도 매번 내부의 적인 ‘밀정’에 의해 의열투쟁 거사가 실패하거나 조직이 와해되었다.

대한광복회는 1918년 1월 이종국이 천안경찰서에 밀고함으로써 전국의 조직망이 발각되어 주요인물 37명이 검거, 사형 당하면서 조직이 파괴되었다. 의열단은 1923년 초, 조선총독부 등 일제 관공서와 총독 사이토(齋藤實) 등 일제 고관을 대상으로 하는 제2차 파괴·암살 계획을 추진했으나 폭탄 운반을 맡았던 김재진이 평안북도 경찰부 고등과 김덕기(金悳基)에게 매수되어 일본경찰에게 밀고함으로써 의거 착수 준비과정에서 좌절되고, 관련된 의열단원들은 모두 체포됨으로써 의거는 실패하고 말았다. 이 의거에 참여했던, 영화 ‘밀정’에 나오는 한국인 일본경찰 황 옥 경부는 평소 일본경찰 노릇을 했으나 임정 요원을 체포하러 중국으로 갔다가 김 구에게 설득되어 오히려 광복투사가 된 인물이다. 그런 사람을 광복투사로 봐야 할지, 매국노로 봐야 할지는 숙제로 남겨 둔다.

이처럼 대일광복투쟁 단체도 일본사람보다 밀정 짓을 하는 가까운 주변의 우리나라 사람들의 밀고로 대원이 체포되고 거사를 실패하거나 조직이 무너졌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언제 어디에서나 그런 사람은 있어 왔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자신의 영달과 명예를 위해 일본 우익들로부터 돈이나 접대를 받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 우익들이 제시하는 자료들로 그럴듯하게 포장을 하지만, 그들이 바로 요즘 흔히 ‘토착왜구’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로서 일본 극우파들의 신친일파 양성 계획에 따라 양성된 ‘신친일’파요 ‘밀정’들이다. 광복 직후 친일파 청산을 하지 못해 생긴 사회적 가치기준의 혼란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들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갉아먹는 암적 존재들이다.

문제는 앞으로 누구도 그런 밀정 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근본대책 마련이다. 말로 그런 사람을 욕하고 처벌하자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KBS가 이름을 밝힌 독립유공자가 된 ‘밀정’들을 확인해 빼내면서 광복 직후에 하지 못한 과거 친일파의 청산을 위한 지혜도 모아야 한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지금도 신친일파 양성 계획에 따라 돈과 명예(학위나 직위 수여 등)를 주면서 접근하는 일본 우익들의 유혹에 현혹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목숨과 돈과 노력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할 만큼 가치 있는 나라, 자랑스러운 민족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주는 역사 교육이다.

그런데, 현재 초·중·고등학교에서 필수로 가르치는 역사교과서는 조선총독부가 식민지 교육용으로 만든 밀정 교육 내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루빨리 나라와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생기게 하는 바른 역사가 복원되어야 밀정들도 없어질 것이다.

박정학 역사학박사, 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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