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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학의 역사산책
‘대전(大田)’, 일제가 남긴 말 속의 혈침인가?
2019. 08. 04 by 울산제일일보

‘대전(大田)’은 현재 인구 150만 명 이상이 사는 광역시다. 대전시 홈페이지에 “대전(大田)은 우리말 큰 밭, 즉 넓은 들판이라는 뜻의 ‘한밭’이 한자화 된 이름이다.”고 되어 있고, 많은 국민들도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런데, 원래 이름은 태전(太田)이었는데, 1909년 이토 히로부미가 이 땅의 정기를 끊기 위해 바꾸었다는 말이 전해지면서 본디이름 찾기 운동과 이에 대한 찬반 논란이 일고 있어 잠시 산책해 본다.

‘대전’이라는 지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대전천’이 나오고, 1689년경에 나온 『초산일기』에 송시열 장례 때의 상여꾼 동원 마을 이름에서도 보이며, 『대전지명지』 등에 1600년대에 그 이름이 나타나지만, 행정구역으로 편성되지도 못한 작은 자연마을이었다. 그러다가 고종 때인 1895년에 처음으로 행정지명인 ‘대전리’가 된 후,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때 대전군 대전면이, 1931년에 대전읍이 된다. 1932년에는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겨졌으며, 1935년에는 대전부로 되었다가, 광복 후 1949년에 대전시, 1989년에 대전직할시, 1995년에 대전광역시로 발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반면, ‘대전(大田)’의 본디이름은 ‘태전(太田)’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콩 태(太)’자를 사용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시내 중심을 흐르는 대전천(川) 주위로 콩을 많이 심었던 ‘넓은 콩밭’ 지역이어서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았으므로 1895년까지 최소의 행정단위인 ‘리’도 되지 못한 작은 자연마을에 불과하여 붙은 별칭이라고도 한다.

그 ‘태전’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게 된 것은 1901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이 때 경부선 철도가 건설되면서 ‘태전역’이 생기고, 관련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게 됨에 따라 학교와 집, 가게 등이 형성되면서 점차 인구가 늘어나 활기 띤 도시가 되었다는 것이다. 1904년 11월 경부선 철도의 개통을 알리는 대한매일신보와 황성신문의 기사에 ‘태전(太田)’이라는 지명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후 대한제국 정부의 모든 공식문서에 ‘태전’으로 기재되었고, 한국 철도사에도 “초기 역 이름은 ‘태전역’이었으며, 역무원 4명밖에 안 되는 초라한 간이역 정도였는데, 얼마 후 이토 히로부미가 대전(大田)으로 바꾸라고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나온다. 그리고 8·15광복 직후까지도 지역 내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태전’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태전(太田)이 대전(大田)으로 바뀌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일본인이 쓴 『대전발전지』에 구체적으로 나온다. 1909년 1월 순종황제를 호종하여 이곳을 지나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태전역에 내려 휴식을 취하다가 태전의 지세(地勢)와 이름을 보고 그 자리에서 “대전(大田)이라고 바꾸어 부르는 것이 좋겠다.” 고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일제가 우리 민족정기를 끊기 위해 전국 명산에 혈침을 박았듯이 이 지역의 지세(地勢)를 꺾고 그 지기(地氣)를 받아 훌륭한 사람이 태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풀이한다. ‘대(大)’자는 작다는 말에 대립되는 크다는 의미에 불과하지만, 태(太)자는 大자 아래에 찍힌 점이 생명력을 상징하므로 태초, 태극기, 태조임금 등에서 보듯이 ‘시작’과 ‘무한한 크기’와 ‘발전의 에너지(生命力)’라는 뜻이 담긴 글자이므로, ‘무한히 발전해 나가는 생명력이 있는 도시’ 태전(太田)의 생명력을 없애기 위해 점을 떼어버렸다는 말이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책의 내용을 빌지 않더라도 사용되는 말(言)이나 글에서 나오는 파동과 심리적 효과가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그 사실 여부를 떠나 ‘이토가 민족정기 말살을 위해 대전으로 바꾸었다’는 소문만으로도 대전 주변 사람들은 물론 우리나라 발전에 부정적인 심리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일제 혈침’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대전’과 ‘태전’의 소리파동을 비교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필요하다면 이름을 바로잡고 소문의 진위도 알아내어 널리 홍보하는 등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박정학 역사학박사·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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