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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영 칼럼
적수(赤水) 이야기
2019. 06. 25 by 울산제일일보


18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이렇게 말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여러 가지 해석이 있겠으나 일반적인 해석은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사회제도나 문화 속에 들어가면서 부자연스럽고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상은 단지 인간 세계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만물에도 공히 적용되는 듯하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금속인 철(鐵, iron, Fe)을 예로 들어보자. 철은 자연 상태에서는 철광석이란 암석 상태로 존재하며 에너지 준위가 매우 안정적이어서 수천 년, 수만 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 이를 인간이 제철소에서 에너지를 가하여 철로 변환시켜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는데, 이 상태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로, 원래의 상태인 철광석으로 돌아가려는 회귀성이 있다. 이를 공학에서는 산화 혹은 부식이라고 한다.

몇 주 전부터 인천시 수돗물 적수 현상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적수(赤水)란 말 그대로 수도관 내부가 부식되면서 생긴 녹이 수돗물에 섞여서 벌겋게 나오는 것을 말한다. 주로 강관에서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강관은 내부에 흐르는 수돗물과 반응하여 강관 내부 표면에 철수산화물을 형성하게 되고 공기 중에 노출되면서 철산화물로 바뀐다. 이때 녹이 생기게 된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녹은 빨간 녹(rust)으로, 강관 표면에 비교적 견고하게 붙어 있으면 스케일(scale)이라 하고, 이것이 부서져서 부유물이나 침전물 형태로 바뀌면 이를 슬러지(sludge)라고 한다. 우리가 적수라고 하면 이런 스케일이나 슬러지가 수도관을 통해 배출되는 것을 의미한다. 녹이 많이 발생하면 위생상으로나 미관상으로도 안 좋은 적수가 발생할 뿐 아니라, 수도관의 내부 구경이 좁아져서 유량도 줄게 된다. 또한 녹이 발생하면 강관의 내부로도 부식이 진행되어 누수가 발생하게 되고, 이는 주변 토양을 침식시켜 싱크 홀과 같은 현상으로도 이어진다.

적수가 많이 발생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처음에 수돗물을 공급할 때다. 이때는 강관 내에 형성된 기존의 녹이 첫 통수할 때 씻겨 나가면서 적수가 발생하게 된다. 두 번째는 오랜 가뭄이나 취수장, 정수장 등의 고장으로 장시간 단수가 발생할 때다. 이때 배관 내에 물이 빠지면서 스케일이 많이 형성되는데, 이후 통수 시 상당한 적수가 발생하게 된다. 세 번째는 배관 누수나 수계 변경 등에 의해 공사가 진행될 때다. 이때도 관내의 스케일이 많이 생겨 다시 물을 흘릴 때 다량의 적수가 발생한다. 이번 인천지역 적수 현상은 수계 전환에 의한 것이라 하니 세 번째쯤에 해당된다.

이밖에도 아파트 물탱크 청소 시에 수 시간 동안 적수 현상이 나타난다. 그리고 드문 경우지만 연수기가 설치된 수도관에서도 적수 현상이 발견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수돗물은 산도(pH)를 중성인 7에 맞춰 공급하는데, 연수기를 거치면 산도가 다소 낮아지면서 녹이 발생하기 좋은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적수를 방지하는 방법이나 기술은 없는 것일까? 답은 당연히 “있다”이다. 우선 가장 널리 쓰이는 기술은 배관 내부를 코팅해서 배관과 수돗물의 접촉을 차단하여 녹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로 배관이 공장에서 출고될 때 내부는 에폭시란 물질로 코팅되어 나오는데, 이 물질은 얼마 못가 다 소진되어 녹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 좀 더 좋은 물질로 두껍게 코팅하면 좋으나 비용과 실용화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다음은 관의 재질을 바꾸는 것이다, 주철관이나 합성수지관 같은 걸로 바꾸는 것인데, 모두 적수 발생 측면 말고는 다른 측면에서 더 큰 단점이 있다.

그 다음은 ‘갱생’이란 기술이 있다. 갱생이란 사용 중인 노후배관의 내부를 코팅하거나 새로운 관을 끼우는 기술인데, 이번 인천 사고 이후 몇몇 매체에서 대안으로 보도한 바 있다. 이 방법 역시 비용 대비 효과는 떨어진다는 게 단점이다. 그 다음 기술은 수돗물에 인체에 무해할 정도의 가성소다나 인산염 등 약품을 섞는 방법이다. 일부 지자체에서 실증 연구까지 해서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걸로 나왔으나 음용수에 약품을 넣는 게 국민 정서상 맞지 않아 실용화를 못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들처럼 통수 시 소석회를 풀어 배관 내부를 탄산칼슘으로 코팅하는 방법도 있으나, 이 역시 국내와는 수질이 달라 효과가 없다. 마지막으로는 전기방식이나 전자기장 같은 전기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전기방식은 수도관 내부에는 적용하기가 힘들고, 전자기장을 인가하여 물의 성질을 바꾸는 방식은 효과는 있으나 검증이 덜 되어 있는 상태이다.

적수 현상은 강관에서는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나 기술적으로 크게 줄일 수는 있다. 구미 선진국에서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전문가들이 모여 철저하게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까지 세운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언론에서 시끄럽게 보도할 때만 잠깐 이슈화되고는 곧 잊혀진다. 그래서 똑같은 사고가 되풀이된다. 이번만큼은 확실한 대책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 대표이사·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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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26 01:29:02
스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