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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학의 역사산책
‘스승’답지 못한 ‘선생’들
2019. 05. 13 by 울산제일일보


교육부 지침에 따라 중·고교 역사교사들과 대학교수들이 만든 초·중·고 모든 역사교과서에는 “우리 겨레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이 청동기문화를 바탕으로 건국되었다”는 표현이 있다. 그런데 같은 쪽에는 ‘우리나라 청동기시대는 서기전 20~15세기에 시작되었고, 고조선은 서기전 2333년에 건국되었다’는 표현도 있다. 고조선이 청동기시대보다 4세기나 먼저 건국되었다고 잘못 서술한 것이다.

이런 모순을 지적하자 구구한 변명 끝에 ‘그래도 학생들에게 상상력을 자극하는 효과는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교과서 집필자들과 정부가 학생들을 우롱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잘못된 청동기시대 편년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4일 한국교원대 송호정 교수는 이런 잘못된 청동기시대 편년을 기준으로 ‘그 이전은 신석기시대이므로 국가가 세워질 수 없다’면서 고조선 역사를 ‘신화’로 몰아붙이기까지 했다. 고조선 역사가 ‘신화’라는 조선총독부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편년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든다.

청동기시대에 고대국가가 시작된다는 것은 동·서양 역사학계의 일반적 인식이므로 역사에서 청동기시대 시작 시기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1974년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 고인돌 유적에서 서기전 2325년대 청동기시대 유물이 나왔고, 1986년 목포대박물관이 보고한 전남 영암군 장천리 주거지 유적에서도 서기전 2630, 2365년대 청동기 유물이 나왔다. 북한에서도 서기전 40세기 초의 청동기 유물이 발굴되었고, 고조선 세력범위에 포함되는 중국의 홍산문화 지역에서는 서기전 26~25세기 청동기 유물, 특히 오한기 서태 지역과 뉴허량 13지구에서 서기전 30세기 이전의 청동기 거푸집이 나왔다.

이러한 발굴성과는 사마천의 『사기』를 포함한 중국 사서 30여 권의 기록 “구려의 임금인 치우(붉은악마의 상징인물)가 서기전 2700년대에 금속무기를 제작하여 황제 헌원과 싸웠다”를 뒷받침한다. 그래서 신용하, 윤내현 등은 이미 30여년 전에 서기전 40c~25c 사이에 우리 민족의 청동기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와 학자들은 이런 명확한 근거자료들을 모두 무시하고 있다.

그래서 국민신문고를 통해 “청동기시대 시작 시기와 고조선 건국 시기의 서술 내용이 서로 모순되는데, 어느 것이 맞는가?”라고 질의했더니, 교육부는 “우리나라에서는 서기전 2000년 이전 청동기시대 유물이 발굴되지 않아 그렇다”고 거짓답변을 했다. 구체적 발굴성과들을 왜 무시하느냐고 다그쳤더니 ‘학계의 통설이 그렇다’고 변명을 했다. 더구나 검정교과서 집필진은 “기록과 유물의 연대가 다르므로 고조선의 건국 연대를 역사적 사실로 단정하지 않으면서 학생들에게는 상상력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고 무책임하게 답변했다. 이런 ‘선생’들은 ‘스승’ 대우를 받을 자격이 없다.

고고학적 발굴성과와 역사기록까지 무시하면서 ‘학계의 통설’이라며 제시하는 잘못된 청동기시대 편년은 국내적으로 단군신화론 주장에 이용되는 데 그치지 않고, 홍산문화와 흑룡강문화 등 만주지역에 있는 단군 이전 우리 조상들의 문화유적들을 중국에 넘겨주는 결과로 이어진다. 실제로 중국은 우리가 이렇게 버린 홍산문화 지역의 서기전 20c 이전 청동기 유물들을 기준으로 ‘5500년 전에 국가사회가 시작되었다’는 안내판을 세워놓고 있다.

이제 우리 조상들의 만주지역 유적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잘못된 ‘학계의 통설’을 따를 것이 아니라, 사실에 따라 청동기시대 편년을 바로잡도록 학계를 유도해야 한다. 이미 발굴된 유적과 유물, 중국 고서의 기록만이라도 인정하면 우리나라 청동기시대가 고조선 건국 이전에 시작되었다고 편년할 수 있다.







박정학 역사학박사·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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