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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산책
5월 지리산이 주는 지혜
2019. 05. 09 by 울산제일일보


5월 초 지리산(智異山) 신록은 산 아래에서 위로 더디게 흐르고 있었다. 지리산을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方丈山)이라 하고, 백두에서 흘러 맺힌 산이라 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한다. 성삼재에서 새벽 3시에 출발, 찬 공기를 가르며 노고단 고개에 오르니 3시 30분. 기온은 0도 남짓, 산행하기에는 딱 좋았다. 노고단 복주머니난을 상상하며 어둠을 헤치고 능선을 따라 계속 진행했다. 아직 하늘의 별빛이 이마를 간질이는 시각, 등산로 주변에는 이제 막 봉오리를 벌린 진달래가 나를 반긴다. 평지는 신록을 벗고 녹음 채색이 한창인데도 지리산 능선은 아직도 초봄이었다.

임걸령을 지날 무렵 여성 산악인 한 분이 갑자기 멈춰서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묻는다. ‘반야봉’이라 적힌 이정표가 방향을 헷갈리게 한 것이다. 여기서 방향을 잘못 잡으면 피아골로 하산해야 한다. 바로 안내하고 노루목에 이르니 여명 덕분인지 시야가 한결 넓어진다. 여기서 잠깐 떡과 우유를 허기를 때우고 한숨을 돌리며 고민하다가 반야봉을 지나쳐 삼도봉으로 향한다. 경상남도와 전라남북도의 경계가 만나는 곳이라 하여 ‘삼도봉’이라 부른다.

화개재를 거쳐 토끼봉에 이르니 5시 42분, 저만치 해가 떠오르고 사방에는 진달래가 무리지어 환호한다. 잠깐 쉬며 간식을 즐기는 사이 누군가 공중에 드론을 띄워 사진 찍기에 바쁘다. 일출과 진달래능선의 알싸한 아침공기까지 고스란히 담으려는 심산이다. 이젠 헤드랜턴을 끄고 막 피어나려는 진달래꽃 봉오리를 감상하며 연하천 산장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산장 뜰은 산행객들로 붐볐고 먼저 도착한 천 대장이 여기 앉으라며 반긴다. 산장 앞에선 김밥으로 아침을 챙기고 샘터에선 샘물로 수통을 채웠다. 형재봉을 거쳐 벽소령산장에 이르러서는 양말을 갈아 신고 무사히 오게 해준 나의 발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합류한 일행과 간단한 단체사진을 찍었다. 선비샘까지는 길이 좋아 속도를 높여 시간을 벌기로 했다. 선비샘에는 물이 많이 나오지 않아 줄을 서야 했다. 영신봉과 세석산장까지는 오르내리막이 반복되기에 반드시 이곳에서 물을 채워야 한다. 다행히 지리산 능선에는 곳곳에 샘이 있어 많은 양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니 배낭 무게를 줄일 수 있다. 종주산행에서는 샘에서 물을 채워야 산행 중의 탈수를 막을 수 있다.

세석산장에 이르는 길에는 진달래와 버들강아지와 생강 꽃이 산객을 유혹하고 있었다. 세석산장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1시 20분. 시간이 일러 점심은 뒤로하고 샘에서 수통만 채운 다음 촛대봉으로 향했다. 촛대봉은 이미 단체산행객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장터목까지 계속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삼신봉 가는 길목에는 현호색과 얼레지 꽃이 아름다운 군락을 이루어 장관이었다. 마음과 달리 배가 고파 오기 시작하여 삼신봉에서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장터목에서 곧바로 제석봉으로 향하는 급경사길이 부담스러워 미리 먹어두면 소화가 조금이라도 되어 오르막길에 조금은 더 몸이 가벼워질 거라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장터목산장을 그냥 지나치면서 거북이 전법으로 제석봉으로 향했다.

오후 1시 24분, 1천806m 제석봉에서는 호흡만 가다듬고는 천왕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통천문(通天門)을 지나 급경사 계단을 오르니 천왕봉 역시 산객들의 천지였다. 성삼재에서 출발한 지 11시간이 지난 오후 2시 정각, 드디어 정상! 여러 번 와 본 산꼭대기이지만 올 때마다 늘 새롭다.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는 정상석의 문구에 가슴이 뛰는 것은 나만의 감상일까? 정상 부근은 아직 겨울이었다. 하산 길에 맛본 천왕샘의 물맛은 차고 달았다. 로터리산장, 칼바위를 거쳐 중산리까지 지루하고 긴 하산 길을 지나면서 비로소 지리산의 참맛, 지리산의 지혜를 온몸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윤주용 울산농업기술센터 소장 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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