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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학의 역사산책
국보 『삼국사기』 이름 바로잡아야!
2019. 05. 08 by 울산제일일보

우리 국민 대부분이 학교에서 배운 대로 『삼국사기』라고 잘못 알고 있는 책의 바른 이름은 『삼국사』다. 그간 국민신문고로 민원을 제기하고, 문화재청장을 만나 설명하고, 언론을 통해 ‘『삼국사기』는 일본인이 붙인 잘못된 책이름이므로 바로잡으라’고 수차례 청원도 했다. 그럼에도, 그간 보물로 지정되어 있던 완본 두 권을 2018년 2월 22일 국보 322-1, 2호로 격상시키면서도 ‘책이름에 대한 아무런 해명이나 설명도 없이’ 『삼국사기』라고 이름을 붙였다. 왜 해명도 못하면서 일본인들이 붙인 잘못된 명칭을 따라가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삼국사』는 1145년(고려 인종 23년) 편찬이 완료되고 1149년부터 1760년(영조 36년)까지 5차례 간행되었으나 초간본과 3차 판각본은 없어지고, 2차 판각본인 국내의 성암본(誠庵本)과 1512년(중종 7)에 간행되어 옥산서원과 이병익이 소장하고 있는 4차 판각본(정덕본 또는 임신본)이 국보가 된 것이다.

그런데, 대한제국 때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책을 현 국보의 이름과 같은 『삼국사기(三國史記)』가 아니라 『삼국사』라고 불렀다.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현존하는 모든 책의 표지에는 『삼국사(三國史)』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판심제(책의 쪽 사이 공간에 쓰인 책이름)도 『삼국사』라고 되어 있다. 둘째,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김부식이 삼국사를 편찬하여 바쳤다(金富軾進所撰三國史)’고 되어 있다.

셋째, 「태종실록」2년 조에 ‘하륜·권근·이첨에게 명하여 『삼국사(三國史)』를 수찬하게 하였다’는 내용을 비롯해, 『조선왕조실록』에 이 책이름이 61회 나오는데, 57회는 ‘삼국사’이고 세조 3, 성종 1 등 4회만 ‘삼국사기’로 기술되어 있다. 넷째, 정약용이 『아방강역고』에서 ‘삼국사운(三國史云)’이라고 기술했고, 「태종실록」에 권근·하륜·이첨이 사료를 편찬하면서 ‘삼국사’를 인용했다는 내용이 나오며, 대한제국 때 제작한 『증보문헌비고』에도 ‘삼국사 유리왕 21년’ 등 책이름을 ‘삼국사’라고 불렀다.

다섯째, 편찬 당시 김부식이 임금에게 올린 글을 『동문수』와 『여한십가문초』에서는 ‘진삼국사표(進三國史表)’라 했다. 『동문선』에는 『진삼국사기표』라고 되어 있으나 신빙도가 떨어진다. 여섯째, 1394년 옥산서원본을 발간한 김거두의 발문에도 책이름을 ‘三國史’라고 했다.

반면, 1908년 일본인 석미춘잉(釋尾春芿)이 처음으로 활자본 『삼국사기』라는 표지의 책을 출판한 이후 1913년의 평정구마삼(坪井九馬三), 1914의 최남선, 1940년 이병도의 『역주 삼국사기』로 이어지면서 일본인 내지 친일파들은 이 책의 이름을 『삼국사기』라고 불렀다. 이에 대해 문정창은 『광개토대왕훈적비문론』(백문당, 1977)에서 “일본인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본국의 역사는 ‘紀’, 제후국이나 속국의 역사는 ‘記’라 했던 중국의 사례에 따라 자국의 역사 『일본서기(日本書紀)』의 ‘紀’에 대한 제후국의 역사책인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우리 역사책에는 ‘記’를 붙여 三國史記로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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