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느티나무 가로수 길에는 검은 줄기와 햇빛이 투과되어 얇고 하늘거리는 초록 잎의 조화로 비발디의 사계(四季) 중 ‘봄’의 1악장 연주회가 열리고 있다. 자연과 생명에 대하여 미당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시간과 온 세상의 기운이라 했고, 시인 강석주는 대추 한 알에 천둥과 번개 등 온갖 고난과 역경이 그 안에 담겨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 세상 모든 고등생물의 출발점은 국화도 대추열매도 아닌 작고 여린 새 순, 신록(新綠)이다.
필자는 일전에 대구 앞산에서 달성군 비슬산까지 종주산행을 한 적이 있다. 능선에는 진달래, 복사꽃, 황금붓꽃, 개별꽃이 만발하고 산 아래에서 시작된 초록빛은 물비늘을 일으키며 들불처럼 산꼭대기를 향하여 타오르고 있었다. 중턱은 유백색의 산벚꽃이 어우러져 묽은 물감을 붓으로 툭툭 찍어 그린 한 폭의 밝고 시원스러운 수채화 같아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눈길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하면서 ‘와 좋다’ ‘멋지다’ ‘행복하다’란 말이 마음속에서 절로 우러나왔음은 나만의 느낌이었을까? 초록의 향연이 펼쳐진 숲길을 걸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마음과 몸이 맑고 편안해지면서 금세 열릴 것만도 같아진다.
신록에 대하여 시인 박재삼은 <벙어리가 소리 지를 뻔한/ 연한 잎이 핀/ 눈부신 만 천 가지 비밀을/ 대명천지 속에 내놓아/ 밑도 끝도 없는/ 기쁨을 연출하고 있는/ 이 커다란 손을/ 이 기막힌 호사를>이라고 표현했다. 신록을 보면 우리는 흔히 눈이 시원해진다고 한다. 이유를 밝히는 연구 가운데 하나가 한국해양대학교 최철영 교수 팀의 연구로, 최 교수 팀은 녹색 파장의 빛을 이용해 어류의 손상된 망막세포를 회복·재생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이 연구에 의하면 다양한 LED 파장의 빛을 해양생물에 적용하여 연구한 결과, 녹색이 눈의 피로를 감소시켜 준다는 기존의 속설을 다시 한 번 증명해 냈다.
흔히 스마트폰에서 방출되는 청색 파장의 빛은 인간의 망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녹색 파장의 빛은 사람에게 컬러 테라피(Color therapy, 색채 치료)에 활용될 정도로 생물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다. 최 교수는 “녹색 빛이 어류 망막세포의 회복에 기여함은 물론, 빛 공해로 인해 만성적 눈의 피로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인들의 시력 회복에도 도움이 되는 길을 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요즘 나뭇잎 색깔, 참 기가 막히게 예쁘지요? 근데 왜 연한 초록색일까요? 그냥 새 잎이어서 그런가요? 여름이 될수록 색이 짙어지는 것 같은데. 왜 그렇지요?
나무를 비롯한 식물들은 엽록소라는 녹색을 띠는 물질로 생명의 기본현상인 광합성을 한다. 잎의 엽록체 안에 있는 엽록소는 햇빛이 강한 여름에는 광합성을 많이 하면서 증가하여 여름이 가까워질수록 짙은 녹색으로 보인다. 처음 새 순이 나올 때는 붉은색 계통과 다양한 연초록색으로 시작해서 햇빛을 받으며 하늘거리는 초록으로 변하여 신록의 하모니를 이룬다. 이 연약한 나뭇잎 하나가 광합성을 시작하여 만든 산소와 영양분이 만물이 살아갈 수 있는 생명체의 출발인 것이다.
이양하 선생은 수필 ‘신록예찬’에서 자연이 우리에게 내리는 혜택 중에서도 그 혜택을 가장 아름답게 나타내는 것은 봄, 봄 가운데도 만산(萬山)에 녹엽(綠葉)이 싹트는 이때일 것이다’라고 했다. 언제 벚꽃이 왔다 갔는지도 모르게 반짝이는 여린 잎들이 손을 내밀고 있다. 이를 두고 선생은 ‘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쳐 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라고 했다.
연한 이파리 하나가 세상을 향하여 나오면서 세상의 문이 열렸다. 천지에 생명이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일도 계절의 수레바퀴에서 나오는 신록의 경이로움과 같이 찬란하게 이어지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