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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영 칼럼
중소기업 정책, 요것만이라도 고쳤으면
2019. 03. 03 by 울산제일일보


달포전의 일이다. 모 대기업의 고참 부장과 티타임 중에 들은 얘기다. “제가 회사 초년병 시절에는 우리 회사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사장님들 연봉이 우리 부장님보다 몇 배는 많았는데, 지금은 제 연봉이 웬만한 중소기업 사장님보다 더 많은 것 같아요~.”

언론 보도에 의하면, 얼마 전 설 명절 때 중소기업의 평균 상여금은 지난해보다 더 줄어든 42만원 정도였고, 그나마 업체의 절반 정도가 자금난으로 상여금을 지급하지 못했다. 이에 비해 모 대기업은 작년에 사상 최대의 흑자를 기록해 설 상여금으로 기본급의 1천700%에 달하는 수천만원을 지급하는 등 잘 나가는 대기업은 설 상여금으로 평균 수백만원씩을 지급했다. 요컨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설 상여금 격차가 근 10배에 달하고, 이런 격차는 해마다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해지듯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도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는 셈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중소기업을 살리겠다고 아우성이고, 국민의 혈세를 투입하여 보호·육성하는데도 왜 이렇게 중소기업의 현실은 점점 더 열악해지고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것일까. 어떤 경제학자는, 우리나라는 경제발전이 본격화된 1960년대부터 중화학공업과 같은 대기업 위주의 경제성장 정책을 인위적으로 펴다보니, 중소기업들은 자연히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이에 비해 글로벌 강소기업을 많이 가지고 있는 독일, 일본 등지에서는 우수한 자체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들이 자생적으로 생기고 성장했으며, 특정 대기업에 예속된 게 아니고 전 세계를 상대로 제값을 받고 기술과 제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국내 중소기업과는 태생적으로 다르다고 한다.

국내에도 대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중소기업 말고도 글로벌 강소기업을 목표로 창업한 중소기업도 많이 있다. 하지만 이 중 1~20% 정도만 나름대로 선전할 뿐 절반이 넘는 회사가 경영난으로 고심하고 있다.

필자가 10여 년 전 국내 유명 공기업에 근무하면서 독일이나 일본의 전문가들을 불러 설비 진단을 할 당시 해외전문가의 일당은 항공료, 체재비, 보고서 작성비 등은 별도로 하고도 80~100만원이나 되었다. 그래서 해외전문가 한두 사람이 한 달 정도 오면 대략 1억원 가량의 비용이 지불되었다.

필자가 하면 반값만 받아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부푼 꿈을 안고 회사를 차리고 첫 견적서를 제출했을 때가 생각난다. 여러 가지를 고심하고 고려한 끝에 일당을 50만원대로 잡아 제출했더니, 바로 회신이 왔다. 근거가 뭐냐고. 이래저래 설명을 했더니 타박과 함께 ‘엔지니어링 노임단가’라는 것을 보내주었다. 그걸 보니 필자의 등급은 특급기술자에 해당했고, 분야는 기타산업이었고, 일당은 약 20만원 정도였다. 각박한 국내 중소기업의 현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후 지하에 매설된 배관의 안전을 진단하는 기술을 런칭시키게 되었으나 중소기업의 공신력으로는 영업을 하는 데 한계가 있어 안전 관련 공기업과 제휴했고, 해당 공기업은 영업과 계약을 하는 걸로 하고 근 6~7년을 협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공기업의 부서장이 찾아왔다. 그는, 해마다 국정감사, 감사원감사를 받는데 매번 특정 회사와 수의계약을 하느냐고 질책과 더불어 개선하라는 처분을 받았다며 진단 업체를 늘리자고 사정사정 하는 것이었다. 몇 번은 거절했지만 중소기업이 큰 기업의 요구에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어 결국은 수용하게 되었고, 지금은 근 10개에 달하는 업체들이 난립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앞서 언급한 대기업 부장도 우리 회사의 기술력을 높이 평가하고는 수의계약을 하기로 하고 계약부서에 품의를 올렸으나 계약부서에서는 무조건 ‘최저가 입찰’만 고집한다며 오히려 필자에게 하소연까지 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작년에는 10여 년 전 진단단가의 5분의 1 수준으로 다른 업체가 수주했고, 6개월 정도는 걸릴 줄 알았는데 3개월 만에 다했다며 실소를 짓기도 했다

어떤 특정 회사와 조직을 험담하려는 게 아니다. 필자의 입장에서 본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현실을 얘기하면서 대책을 촉구하고 싶을 뿐이다. 우선 요것 하나만이라도 반드시 개선했으면 한다. ‘최저가 입찰제’를 폐지하는 것이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계약의 투명성을 위한 것이라지만, 이 제도가 계속되는 한, 기술력 있는 중소벤처기업은 고사할 수밖에 없고, 이는 대기업의 품질이나 안전경영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며, 매년 반복되는 대형 안전사고의 원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원천기술을 개발한 국내 우수 중소기업들이 모두 사라지게 되면, 결국 우리나라의 기술산업 기반도 위기에 처하고 말 것이다.

작년에 한국산업단지공단에서 기술용역을 발주하면서 기술평가를 100점 만점에 80점을 배정했다.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향후 모든 대기업들의 롤 모델이 되었으면 한다.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 대표이사·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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