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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학의 역사산책
가슴 설레며 맞이하는 ‘설날’
2019. 01. 30 by 울산제일일보


곧 설날이다. 음력 새해가 시작되는 날로서 어릴 때 무척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했던 기억이 난다. 특히 고향을 떠나 있는 사람들은 설날과 한가위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고향에 가서 부모님과 어른들께 인사를 하고, 차례를 지내야 하는 날로 생각한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짐 보따리보다 훨씬 넉넉해진 마음을 가득 안고 돌아온다. 특히 설날 귀성인파는 세계인들이 놀랄 정도로 대단하므로 ‘왜?’라는 말로 재미있는 산책을 시작한다.

‘설날’의 역사는 신라 때부터 원단(元旦), 원일(元日) 등으로 기록될 정도로 오래되었고, 동지에서 대보름까지 또는 1월 1일부터 보름까지 설맞이 행사를 하기도 했다. 농한기라 시간의 여유가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설’이란 말의 뿌리에 대해서는 ‘낯설다’의 ‘설’과 같이 첫날이니 ‘낯이 선 날’에서에서 왔다는 설을 비롯해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나이 몇 살’의 살(=歲, 年)에서 변형되었다는 설, ‘서럽다’에서 왔다는 설, ‘몸을 사리다’처럼 조심한다는 ‘사리다’에서 왔다는 설, 새해가 ‘서는 날(立日)’, 해의 첫머리라는 의미의 ‘선(先) 날’ 설 등 매우 많다.

그러나 나는 ‘새’라는 말 뿌리에서 나왔다는 설을 가장 좋아한다. 여기서 ‘서’는 ‘새 벌’이 셔블→서라벌→서울로 변화되었듯이, ‘처음’ ‘첫’이라는 의미를 가진 어소 ‘하’가→사→서로 변화된 것으로, ‘새’ ‘새로운’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ㄹ’은 태양(日=해)이란 의미의 ‘라’에서 ‘ㅏ’가 탈락된 것으로 보아, ‘설’을 ‘새 해’라는 의미의 말로 보니 “설날”은 “새해 첫날”을 의미한다는 것이 박 현의 주장이다.

그리고 설날의 세시풍속도 차례와 성묘, 세배, 설빔, 세찬과 세주, 덕담, 문안비, 계호도(설 그림), 복조리 걸기, 야광 귀 쫓기, 청 참, 윷놀이, 널뛰기, 머리카락 태우기, 유모일과 무모일 점, 오행점 등 점치기, 법고 등 그 종류가 상당히 다양하다. 특히 정월은 한해가 시작되는 달이다보니 해가 바뀌면서 상서롭고 복된 한 해를 맞이하자는 의미에서 집안이나 이웃끼리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1일에서 15일까지를 ‘정월 선보름’이라 하여 집단민속이나 개인 놀이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그리고 계속 이어지기도 했다. 또한 설 차례 후의 음복인 도선주(屠蘚酒)는 ‘송곳은 끝부터 들어간다’고 하여 다른 음복 때와 달리 나이가 어린 사람부터 마시기 시작해 차차 나이가 많은 노인의 순으로 마셨다는 재미있는 얘기도 있다.

그런데, 귀성 행렬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다. 나는 15년쯤 전 어느 학술대회에서 ‘상고시대 우리나라의 연맹형 통치체제’라는 주제로 발표한 바 있었다. 간추리면 이렇다. 서구에서 국가라 하면 중앙집권 국가를 의미한다고 하여 우리 교과서에서도 삼국시대 중기가 되어야 중앙집권 국가, 즉 제대로 된 국가의 모습이 등장한다는 일본인들의 주장을 그대로 싣고 있다. 하지만, 말을 타고 먼 지방도 다니던 기마종족으로는 먼 거리에 형성된 혈연 부족이나 협력 고을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또 그렇게 먼 거리에 있는 마을이나 고을은 중앙에서 관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순수(巡狩)라는 방법을 통해 임금이 지방을 방문하거나 제천행사라는 범국가적 단합행사 때 지방특산물을 가지고 모두 참석하도록 하여 화백회의도 하고 지금의 전국체전이나 국전과 같은 국중대회를 개최하여 단합을 도모했을 것이다.

나는 명절 귀성행렬이 이런 제천행사 때 중앙으로 모이던 풍습의 잔재라고 생각한다. 국가차원이 아니더라도, 기마를 하고 멀리 지나가다가 마을에 들러 얻은 자식들이 있을 수 있는데, 그들은 제천행사처럼 1년에 한두 번 정도는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찾는 것이 풍습이 되었다고 본다. 이처럼 귀성행렬이 우리 겨레의 단합행사의 역사와 연결되어 있으니 어찌 가슴 설레지 않겠는가.



박정학 역사학박사·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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