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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영 칼럼
1월의 어느 날, 추사 김정희를 생각하며
2019. 01. 21 by 울산제일일보

족히 8~9년은 된 듯싶다. 그때도 지금 같은 추운 겨울이었고, 장소는 강원도 강릉의 유명한 커피숍이었다. 추운 바닷바람을 한참 맞고 나서 꽁꽁 언 몸을 녹이려고 찾아간 그 커피숍은 아주 특이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바닷가에서 제법 떨어진 농가 사이, 높게 두른 담 안에 지어진 헛간 같은 그 건물은 창문도 거의 없어서인지 밝은 바깥에 있다가 들어가니 꽤나 어두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나마 약간의 반전이 있었다면, 구수한 커피 향과 높은 벽 사이로 난 작은 창에서 새어나온 한 줄기 햇살이 낯선 곳에 대한 경계심을 잠재우며 나를 반겨준 일이다. 그날 나는 그 커피숍의 투박한 테이블에 앉아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의 그 은은한 맛과 향을 한 움큼의 햇살과 함께 아주 천천히 음미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접하게 된 것이 추사 김정희가 제주 유배 시절에 쓴 ‘소창다명(小窓多明) 사아구좌(使我久坐)’라는 유명한 시구였다.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밝은 햇살이 나를 오랫동안 앉아있게 한다.’라는 뜻일 게다. 이 묘하고 이색적인 체험은 나의 강릉 추억과 더불어 오랫동안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올해는 연초부터 감기에 걸려 골골하느라 평소에 즐기던 저녁 술자리도 애써 마다하면서 모처럼 책도 읽고 음악도 들으며 나름 자숙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우인으로부터 SNS로 받아 쥔 것이 추사 선생의 ‘세한도(歲寒圖)’에 관한 콘텐츠였다. 8~9년의 시간차와 강릉과 울산이란 공간차가 있었음에도 그 전 못지않은 감동을 받았다.

세한도 역시 김정희가 제주 유배 시절에 그린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문인화이다. 제자이자 친구인 이상적의 호의에 보답하기 위해 그렸다고 하는데, ‘세한’이란 논어(論語)의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이란 구절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즉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 걸 알게 되었다.’라는 뜻으로, 오랜 유배생활에도 자신을 잊지 않는 이상적의 의리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그림은 참으로 군더더기 없이 단출하다. 너무 단출해서 적적함과 한기가 느껴질 정도이다. 동그란 창문 하나 그려진 조그만 집 하나, 앙상한 가지에 듬성듬성 잎을 매달고 비스듬히 그 집에 기댄 늙은 소나무 한 그루, 그리고 몇 그루의 잣나무, 이게 다다.

제주도 대정읍에 가면 ‘추사로’라는 도로가 있고, 이곳에 추사가 유배되었던 유적지를 복원한 곳이 있다. 추사 유적지 한쪽에는 유명한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추사관이 들어서 있다. 세한도에 나오는 둥근 창이 있는 초막을 형상화한 커다란 콘크리트 건물로서, 어떻게 보면 성의 없이 지어진 그저 그런 기념관일 수도 있지만, 진면목은 내부에서 알아낼 수가 있다. 내부에 들어서면 바닥면이 지하로 깊게 들어가 있어 둥근 창은 햇빛만 들어오지 밖으로는 볼 수 없는 구조로 꾸며져 있다. 건축가가 ‘소창다명(小窓多明) 사아구좌(使我久坐)’를 구현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감기로 인해 모처럼 몸을 쉬면서 옛 현인의 글도 읽으며 잠시 내 주변을 둘러볼 시간을 갖게 되었다. 어느 시인이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이라고 노래했듯 주변에 온통 고마운 사람들뿐이다. 그동안 사업을 한답시고 잊고 지낸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어떤 분들은 “내가 좀 더 잘해서 내가 좀 더 부를 이루면 보답해야지”라고 미루면서 대책 없이 시간만 축을 냈다. 그러다 보니 무지 애만 썼지, 잃은 게 더 많았다. 이는 필자만의 생각은 아닌 듯하다. 모 시인은 절규했다. “돈 가지고 잘 살기는 틀렸다./ 명예나 권력, 미모 가지고도 이제는 틀렸다./ 세상에는 돈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고/ 명예나 권력, 미모가 다락같이 높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요는 시간이다/ (중략) / 내 좋은 일, 내 기쁜 일, 내가 하고 싶은 일 고르고 골라/ 하루나 한 시간, 순간순간을 살아보라/ (중략) / 틀린 것은 처음부터 틀린 것이 아니었다 / (하략)”

요는 마음가짐이다. 추사 선생이 이상적에게 글과 그림으로 마음을 전했듯이, 매일은 아니더라도 가끔씩은 주변의 고마운 분들과 마음을 공유하며 살아야겠다. 요즘은 손전화도 있고, 이메일도 있고, 여러 종류의 SNS도 있다. 약간의 실천의지만 있으면 손쉽게 마음의 표시를 할 수 있다.

이제 곧 설이다. 지금이 진짜 세밑이다. 설 전에 고마운 분들에게 전화라도 한 통, 아니면 톡이라도 한 줄 보내야겠다. 모 시인이 넋두리한 것처럼, 처음부터 틀린 것은 아니었을 게다. 그간 내가 잘못 살아온 것은 더더욱 아니었을 게다.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주) 대표이사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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