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장수 언양장 오갈때 쉬던 곳
울주군 청량면 삼정리 반정도랑 <2>
2011-05-05 이상문 기자
울주군 청량면 삼정리 반정마을의 도랑이 바로 그곳이다. 1930년대 이상원이라는 면장이 언양에서 삼동을 거쳐 청량으로 이어지는 큰 길을 뚫은 후 이 마을은 언양에서 덕하에 이르는 큰길가에 있었다. 지금은 새길이 나서 옛길은 폐도가 되고 흔적만 남아있다. 도랑은 바로 그 옛길을 따라 길게 이어졌다.
이 마을에 사는 김용길(80)씨는 소학교 시절 토요일 오후 학교가 파하면 이 도랑에 반두를 놓고 잠시 기다리면 참게, 붕어가 대여섯 마리씩 잡혔다고 회상한다. 차일광(75)씨는 이 도랑이 어린시절 최상의 놀이터였고 반석이 놓인 아름다운 풍광으로 이 마을 전체가 온화한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차씨는 “과거에는 도랑이 옛길을 따라 길게 이어졌지만 지금은 새 도로가 나면서 길이 높아져 길에서는 도랑이 보이지 않게 돼 버렸다”며 “그러나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도랑이 젖줄과도 같은 셈”이라고 말했다.
반정도랑도 오염을 피해가지 못했다. 이 마을 김수환(68) 이장은 “마을의 주거시설이 현대화되면서 정화조에 고인 하수가 모두 이 도랑으로 흘러들어간다”며 “10여년전 새 도로가 포장되면서 이 도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들이 오염을 부채질했다”고 주장했다.
주거시설이 현대화되기 전 재래식 화장실에서 고인 오물들이 대부분 주민들의 논밭에 거름으로 사용됐지만 수세식으로 바뀐 뒤 고스란히 도랑으로 무단 방류되고 있다. 이 마을에는 아직 생활오수를 처리하는 차집관거가 매설되지 않은 상태다.
도랑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 길이 2m, 폭 1.5m 정도 되는 큰 반석이 있고 그 반석 위에 사람 발자국 같기도 하고 짐승의 발자국 같기도 한 흔적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김씨나 차씨는 어릴 때부터 이 반석이 기이해 어른이 돼서도 고고학적 가치가 있다고 여겼지만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전했다.
김 이장은 “이 도랑은 여느 도랑과는 달리 아름답고 길이가 길어 잘만 가꾸고 복원하면 과거에 그랬듯이 시민들의 소중한 쉼터가 될 것”이라며 “그러나 행정에서 한 번도 이 도랑의 가치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생활하수가 무단 방류되고 수목이 우거져 자연이 오히려 도랑을 쓸모없게 만들고 있지만 아무런 대책없이 이 상태가 방치되고 있다. 20여 가구에 60대 이상의 주민 40여명이 살고 있는 반정마을의 민도가 워낙 약한 것도 반정도랑을 방치하게 된 주된 원인으로 분석된다.
높아진 도로로 마치 계곡처럼 변해버린 반정도랑은 차량 통행이 뜸해지면 좁고 긴 도랑에 물 흐르는 소리가 정겹게 들린다.
이상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