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월성에 흙길이 있는 이유
2010-04-07 울산제일일보
제대로 된 경주를 음미하려면 두 곳을 가봐야 한다. 하나는 노무현 정부시절 문화재청장을 지냈던 사람이 거론하기 시작해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된 진평왕릉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반월성과 계림이다.
특히 반월성 얘기를 하면 진부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반월성 안을 천천히 걸어봐야 신라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진평왕릉과 반월성은 그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전혀 인간의 손길이 보태지지 않았다. 두 곳 모두 40년 전 그대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유적지로 가는 길이 포장됐다는 정도다. 그래서 반월성 안은 비가 오면 아직도 흙탕길이다. 진평왕릉도 마찬가지다. 비가 오면 질퍽거리는 길을 따라 제법 걸어 들어가야 왕릉에 닿는다.
게다가 5년여에 걸쳐 경주지역 문화유적을 단장한 결과 신라 고도(古都)에 또 하나의 ‘일본 교오토’가 생기고 말았다. 문화재를 정비하면서 일본 방식을 채택하는 바람에 경주 시내가 온통 왜색(倭色)으로 바뀌고 만 것이다. 뒤이어 문화재 관련 전문가들의 비난이 쏟아지자 원상 복귀하는데 정비비용의 약 3배가 투입됐다고 한다. 그 때부터 경주시는 문화재를 다루는 최소한의 기본법칙을 터득했다. 그래서 반월성은 절대로 손을 대지 않는다. 잡초가 무성해지면 인부를 동원해 제거하는 것이 전부다.
지금도 계림 앞을 지나 반월성에 오르면 천 년 전 신라 모습을 그릴 수 있다. 눈을 감고 성안 허허 벌판을 걸으면 곳곳에 어우러져 있던 궁궐들이 떠오른다. 이 궁궐과 안압지를 연결해주던 긴 구름다리도 연상할 수 있다. 진평왕릉도 똑같다. 보문으로 통하는 외곽 자동차도로가 그렇게 번잡해도 잠깐 비켜 이곳에만 들어오면 신라의 천년 미소를 느낀다.
두 곳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자동차들이 못 들어오게 돼 있다. 들어온다 해도 상당히 떨어진 입구까지만 차량 진입이 가능하고 일정지역부터는 걸어야 한다. 당연히 매점이나 위락 시설도 없다. 흙과 하늘과 찾는 사람들의 상상력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 만큼 주위가 고요하기도 하다. 그냥 생각에 잠겨 걷기만 하면 되는 곳들이다. 그러면서도 만날 것은 다 만나고 볼 것은 다 본다. 진평왕도 만나고 그의 죽음을 슬퍼하던 어린 ‘덕만’이도 만난다. 반월성 안 궁궐을 분주히 오가던 궁녀들도 보이고 건너편 남산 자락에 있던 민가도 보인다.
얼마 전 만났던 문화재 전문가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는 문화재란 있는 그대로 놔두는 것이라고 했다. 필요하다면 땅 속에 그냥 묻어두는 게 좋다고 했다. 경주 도처에 깔려 있는 고분(古墳)을 일일이 발굴하지 않는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울산 사람들이 경주에 가면 반드시 흙길을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런데 천 년 전 흙을 아직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은 바로 반월성이고 계림이며 진평왕릉이다.
/ 정종식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