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델라인:멈춰진 시간 - 흰 머리카락, 꽃처럼 피다
2019-12-05 울산제일일보
<아델라인:멈춰진 시간>에서 델라(블레이크 라이블리)는 1908년생이다. 2015년 현재 그녀는 107세의 장수 노인이어야겠지만 외모는 29세 때 그대로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겠냐고 하겠지만 뭐 영화니까.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델라는 29살 때 눈이 오던 날 교통사고로 물에 빠져 죽어가던 중 번개를 맞고 되살아난 뒤 시간이 그대로 멈춰버렸다. 다시 말해 나이를 먹어도 전혀 늙지 않게 되어 버렸다.
으레 축복이라 여길 테지만 이제부터 영화는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주변 사람들이 늙어갈 때 젊음을 그대로 간직한 델라는 정부기관으로부터 연구대상이 되어 자칫 잡혀갈 위험에 처하게 되고, 그 때문에 그녀는 주기적으로 신분을 바꿔 도피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하지만 100년 가까이 29살로 살아가게 된 그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자신이 사랑했던 것들과의 ‘이별’이었다. 벌써 몇 마리째 반려견을 떠나보냈던 델라는 최근에도 한 마리 떠나보냈고, 그 빈자리를 엘리스(미치엘 휘즈먼)라는 남자가 메우기 시작했다. 반려견처럼 이미 몇 명의 남자들을 떠나보냈던 델라에게 사랑은 더욱 힘든 고통이었던 탓에 처음에는 엘리스의 마음을 애써 뿌리쳤다.
삶이든 사랑이든, 인간이라면 누구나 ‘영원’을 꿈꾼다. 하지만 영생이나 영원한 사랑이 부럽긴 하지만 아름답지는 않다고 영화 <아델라인:멈춰진 시간>은 궁극적으로 말하고 있다.
한 때 깊이 사랑했던 사람이 백발노인이 되어 눈앞에 나타나고, 아직도 젊고 탱탱한 자신은 지금 그의 아들과 사랑에 빠져버린 이 막장 시츄에이션이 나름 의미심장한 건 바로 그런 이유다.
물론 늙지 않는 델라는 시종일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그렇지 않았다.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주인공 파이(아르판 칸)는 “삶이란 건 무언가를 끊임없이 흘려보내는 것이고, 그래서 가장 가슴 아픈 건 작별인사를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작별인사를 해도 이별은 아픈 거다.
자신의 시간이 멈춰버림으로써 델라가 흘려보내야 했던 사랑했던 모든 것들은 결국 그녀에게 눈물이 되어 역류했고, 우리 인간들이 꿈꾸는 영원한 삶과 영원한 사랑이라는 게 사실은 얼마나 징그러운 건지 영화는 잘 보여준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 시종일관 반짝반짝 빛이 나는 델라의 외모는 처음에는 아름답지만 시간이 멈춰서기 전 첫 사랑과 낳았던 자신의 딸이 이젠 할머니가 되어 델라와 마주앉은 장면부터는 흉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델라의 풍성한 머리카락들 사이에 생긴 흰 머리카락 하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깨닫게 해주는데 그것은 마치 한 송이 꽃 같다.
마침내 깨닫게 된다. 아름다움의 실체란 꾸밈이 아닌 자연스러움에 있다는 걸. 꽃이 피고 지듯 사랑도 피고 지고, 아름다움 역시 피고 진다. 그게 자연스러운 거다.
어릴 적 즐겨봤던 만화영화 중에 <은하철도999>라는 작품이 있었다. 일본의 전설적인 만화가였던 ‘마츠모토 레이지’의 원작만화를 토대로 만들어진 작품인데 거기서 주인공 철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메텔과 함께 우주를 횡단하는 ‘은하철도999’를 타고 먼 안드로메다은하로 가서 기계인간이 되려고 한다.
하지만 마지막회에서 그는 메텔의 부모님으로부터 이 조언을 듣고는 기계인간이 되기를 포기한다. “인간의 삶이 아름다운 건 유한하기 때문이다.” 2015년 10월15일 개봉. 러닝타임 112분.
취재1부 이상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