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암 공원의 길고양이 가족
2018-11-26 울산제일일보
한 동안 집 근처 명덕호수공원을 참 많이도 걸었더랬다. 울산에 있는 호수공원 가운데는 경치가 가장 좋다고 자부하는 곳인데도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그동안 많이 무감각해졌다. 해서 요즘은 쉬는 날이면 버스비가 좀 들더라도 버스를 타고 방어동 꽃리단길까지 가서 해안길을 주로 걷는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여기 예술이다. 이 동네가 원래 골목 끝에 바다가 있는 낭만적인 동네인데 걷다 보면 더 멋진 풍경들과 계속 만나게 된다.
꽃리단길에서 시작해 외국인 특화거리를 지나면 슬도 방향의 길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여기서 부터가 엑기스다. 물론 그 전에도 계속 바다는 따라다닌다. 이 동네가 좀 멋지다니까. 아무튼 슬도로 빠지지 않고 벽화가 그려져 있는 어촌 작은 마을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드디어 탁 트인 해안산책길이 등장한다. 가본 사람들은 머릿속에 그 모습이 그려질 테지만 안 가본 사람들에게는 사진이라도 보여주고 싶은 심정이다. 울산에 존재하는 길 가운데 아마 가장 예쁠걸?
아마도 어미 고양이들이 그냥 데리고 나왔는가 싶었는데 그 오르막길을 통과하고 한참 뒤에야 머릿속에 뭔가 번쩍하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됐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그 길에서 그들은 생계를 해결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러니까 관광객들이 지나가면서 귀엽다고 던져주는 음식들을 통해 먹고 살고 있었던 것. 고양이가 공장을 돌리거나 논밭을 갈 수는 없는 만큼 대왕암공원의 길고양이들은 쓰레기봉투를 뒤져야 하는 다른 길고양이들보다 나름 현명하게 먹고 살고 있었던 거다. 거의 비즈니스 수준이다. 귀여움을 더 많이 받는 새끼고양이들을 대동한 것도 그런 이유일지도. 어쨌든 가족이 똘똘 뭉쳐 그렇게 잘 버티고 있었던 거다.
사실 어디서든 길고양이를 보면 늘 그런 생각이 든다. ‘잘 버티고 있구나.’ 얼마 전에 봤던 그 길고양이를 오늘 다시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한다. 어디서 자고, 무엇을 먹을까. 이제 겨울인데. 그런데 열혈 시민도 아닌데 대왕암 공원의 길고양이 가족들을 만난 그날은 이상하게도 ‘울산의 긴 겨울’이 오버랩 됐다.
사실 울산이 겨울왕국이 된 건 꽤 오래됐다. 조선업 불황으로 시작된 경기침체는 최근 자동차까지 엎치면서 최악의 상황이 몇 년 동안 계속 이어지고 있다. 울산시민들도 길고양이들처럼 지금 버티고 있는 셈. 그래도 그날 대왕암공원의 길고양이 가족을 통해 작게나마 희망을 느꼈다면 나의 지나친 낭만일까. 바램인건 알지만 춥든 덥든 대왕암공원 길고양이 가족들의 비즈니스가 계속될 건 분명하지 않을까. 또 그것만으로도 희망이지 않을까.
이상길 취재1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