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법치
2018-03-26 울산제일일보
하지만 법(法)은 다르다. 법이 정치처럼 역동적이면 큰 일 난다. 물론 제정 단계에서는 법도 생물처럼 살아 숨 쉬며 변할 수 있겠지만 적용 단계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 무생물인 바위처럼 딱딱하게 굳어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만인 앞에 평등한 법이 될 수 있지 않겠나. 이 사정, 저 사정 다 봐주는 법은 법이 아니다.
이처럼 정치와 법은 본성이 완전히 다른 존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에서 법과 정치는 대단히 가깝다. 법을 만드는 게 바로 정치고, 법조인이 정치판으로 뛰어 드는 경우도 허다하다.
울산으로 부임한 후 황 청장은 이번 울산시장 선거에서 김 시장의 최대 경쟁자로 거론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송철호 변호사를 지난해 두 차례 만났다. 실제로 황 청장은 올 초 기자 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송 변호사를 두 번 만난 상황에 대해 명확하게 해명하기도 했었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 하지 않았던가. 설령 두 사람 간에 이번 압수수색과 관련해 어떠한 교감이 없었다 해도 의심받는 것에 대해서는 황 청장도 할 말은 없을 듯하다.
하지만 자유한국당도 지금 지나치게 법치를 정치로 몰고 가고 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할 듯하다. 경찰의 압수 수색이란 게 혐의를 토대로 죄를 찾아가는 과정일 뿐, 죄가 확정된 건 아니다. 다가오는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법을 적용하는 영역에 속하는 압수수색이 신중할 필요는 없다. 법은 무생물이어야 옳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기계적이어야 한다. 사람이나 상황을 가리기 시작하면 더 이상 법이 아니다. 법치가 정치가 되면 세상은 혼란스러워지기 마련이다.
물론 작금의 이 혼란을 유발했다는 점에서 황 청장도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울산현안과 관련해 아무리 조언을 구할 필요가 있어도 법 집행기관인 경찰이 유력 정치인을 만난다는 건 아무래도 보기 좋지 않기 마련. 법과 정치는 멀수록 좋다. 둘이 가까워지면 무생물이어야 할 법이 생물로 변할 가능성이 높지 않겠나. 때문에 자유한국당과 경찰 모두에게 이번 일과 관련해 개인적으로는 이런 조언을 해주고 싶다. 우리 더 이상 정치하지 맙시다. 그냥 법치로 갑시다. 시민들을 위해.
이상길 취재1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