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과 <밀정>, 그리고 대한민국
2016-09-26 울산제일일보
영화 <암살>은 일제와 친일파를 처단하는 것이 소재이다. 최동훈 감독은 한 의열단원이 남긴 한 통의 편지에 주목했다. 1920년에 부산경찰서장 하시모토를 암살하고 붙잡혀 순국한 박재혁 의사가 의열단장이었던 김원봉에게 보낸 편지가 뒤늦게 전달된 점에 착안하여 이를 영화화했다. <아리랑>의 저자 ‘님 웨일즈’는 김원봉이 “일본 관헌들에겐 가장 공포의 대상이며, 20대 전후 젊은이들에겐 조국 해방의 상징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월북은 사상을 선택했다기보다 친일파들의 득세와 그들에게 당한 모멸감 때문이라고 전한다.
영화 <밀정>은 일제의 조선인 경부에게 의열단의 뒤를 캐라는 특명으로 출발한다. 김지운 감독은 실제로 1923년에 일어난 황옥 경부의 폭탄사건을 스크린으로 불러내었다. 일경과 의열단원이라는 상반된 정체성을 지닌 황옥과 열혈 독립운동가인 김시현이 협력하여 경성 폭탄 반입사건을 일으킨 것을 극화한 것이다. 나라 잃은 비극의 시대에 항일과 친일이라는 경계선 위에서 외줄 타듯 살아갔던 인물의 내면을 쫓는 것이 중심 줄거리다. 황옥은 해방 후 독립운동가들과 친했지만 그 후의 행방은 알려져 있지 않다.
김창룡에 버금가는 악인은 김종원이다. 그는 일본군 하사관 출신인데 거창 양민학살사건 등을 주도하여 잔악한 짓을 일삼았다. 그는 20대 후반의 나이에 숱한 도륙으로 그의 비호세력에 부응했다. 친일에서 독재까지 고문과 조작의 귀재 노덕술도 천하의 악인이었지만 초대 대통령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 희대의 악인 이협우는 고향 사람 200여 명을 죽이고도 3선 국회의원을 지낸 후 제 명대로 살았다. 이 자들만 어찌 악인일까만 일제에 부역하고도 단죄는커녕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고관대작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린 자들이 숱하다.
두 편의 영화를 계기로 정리되어야 할 일이 있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진행되어온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위 폄하 문제이다. 일부 세력들은 임시정부가 국가 성립의 요소를 갖추지 못했다면서 건국절과 이승만 국부론을 들고 나왔다. 마침내 여당에서 이를 법제화시키겠다고 하고, 야당과 강단사학계 다수가 반대의사를 표명하면서 대립하고 있다. 혹자들은 임시정부의 대명사인 김구를 대한민국 건국에 공로가 없다는 말도 내뱉는다.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에도 벅찬 마당에 이런 논란이 우리에게 무슨 득을 가져다주는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3일에 세워졌다. 임시정부는 의열단이나 광복군 등 모든 독립운동의 중심이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당시 연호를 1919년부터 기산한다고 천명했으며, 초대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회복되었다”라고 선언했다. 1948년에 발행된 대한민국 관보 1호에도 ‘대한민국 30년’으로 기재했다. 우리 민족의 건국 연원은 단군을 기리는 개천절이 있다. 현재의 헌법 전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이정호 울산북구문화원 부원장 /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