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아, 철아, 우리 철아” 55
프롤로그 ‘담담한 필체’ 중요하게 제안 동강선생의 필력 가능한 그대로 살려
2008-10-02 울산제일일보
중국 사람들로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인물이다. 그가 없었다면 그 많은 중국의 역사·문화사가 없어질 뻔했다. 그의 담담한 마음은 문자 그대로 물(水)과 불(火)이 어울려져 있는 상태를 말한다. 물과 불이 어울려져 있기란 불가능하다. 이런 상태를 만들어내는 것은 마음이 한쪽으로 호들갑스럽게 치우치지 않아야 가능하다. 담담한 마음으로 일을 하라는 생활의 지향점은 우리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고 정주영 회장이 즐겨 쓰는 좌우명이기도 하다.
동강선생 일대기를 시작하는 프롤로그에 ‘담담한 필체’를 중요하게 제안했던 이유도 이들을 따르려는 바람이었다. 욕심이야 사기(史記)에 버금가는 기록을 남기려는, 담담한 마음을 잔잔하게 보여주는 일대기가 되는 것이었다. 또한 병상에서 구술로 남긴 자서전(당시의 가제 ‘철아, 철아, 우리 철아)은 이유 불문하고 원문에 충실하게 그대로 살리는 것이 후손의 도리라고 여겨서 가능한 한 가필 없이 일대기가 펼쳐졌다. 더구나 경복중학교 시절에 비록 일어(日語)였지만 전국 글짓기 대회에서 은상을 탈 정도의 문학적 자질이 있었던 동강선생의 필력은 현대 문법에 어긋나지 않는 한 그대로 살렸다. 그래야 기록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재력으로 유행어나 만들어 내는 글쟁이(문학을 업으로 하여 잠을 못 자며 괴로운 나날을 보내는 작가가 아님)를 고용하여 근사한 제목으로 자기의 자랑거리만 남기는 글은 그 목적부터 순수하지 못하다. 이런 점에서 동강선생 일대기는 분명히 칭찬 받을만하다. 울산 독자 여러 분의 박수를 고대한다.
우리말의 보존과 발전에 울산이 낳은 외솔 최현배 선생이 계시다면, 울산의 의료봉사 활동의 체계화는 동강 박영철 선생이 계셔서 가능했던 것이다.
그 셋째는 화백 이수원 선생(동강선생이 학성중학교에서 생물을 가르칠 때 같이 교직에 있었던 미술 교사)이 동강 병원에 입원했을 때, 동강 선생이 직접 병실을 찾아와 문병을 하였다. 이렇게 수고스럽게 오면 도리어 미안하다고 사양하니까, ‘내가 이렇게 직접 왔다 가야 직원들이 당신한테 조금이라도 신경을 더 써주어.’라고 대답하였다. 이것이 동강 선생의 인간미인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환자들을 업신여긴 것은 아니다. 동강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의료수가를 지불하지 않고 야간도주를 하여도 오죽했으면 그랬겠느냐고 손해를 감수하는 동강선생의 인간미는 일 년이면 ‘수 억 원’짜리였다(이영자 간호이사의 증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