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를 사다
2015-02-03 울산제일일보
하지만 물건이 있어야 사든지 말든지 할 것인데 도대체 물건이 보이질 않으니 호기심이 발동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파는 물건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노인은 “나는 지혜를 팔고 있다오” 라고 했다. 하도 기가 차 “지혜라? 그럼 값은 얼마 입니까?”라고 그가 다시 물었다. “내가 팔고 있는 지혜는 정가가 1만5천원인데 댁처럼 덕성스러운 사람에게는 반값으로 할인해 7천5백원에 팔겠수”라고 노인이 즉답을 했다. “내가 덕성스럽다?” 황당무계한 이 말도 인연이라 여기며 음덕 쌓기를 좋아하는 그 울산 상인은 결국 형체도 없는 지혜를 사고 말았다. ‘성낼 일이 있으면 여러 번 생각하고 되도록 참고 참으시오. 비록 오늘 쓰지 않는다 해도 나중에 유용하게 쓸데가 있을 것이오. 참지 못하는 성냄은 순식간에 나와 남을 동시에 망쳐 버릴 수 있는 무서운 것임을 명심하시오’라는 누구나 알법한 노인의 지혜를 7천5백원에 산 그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울산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1960년대는 도로 사정이 열악해 서울에서 울산까지 7~8시간 이상이 소요됐다. 비포장도로와 포장도로를 넘나들며 한 밤중에 집에 도착한 李씨는 식구들을 깨우지 않으려고 대문 옆 쪽문을 소리 없이 열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방 가까이 다가가 으스름 달빛에 보니 자신과 아내의 침실인 안방 앞에 신발이 두 켤레 놓여 있었는데 한 켤레가 분명 남자 신발이었다. 아뿔사 이럴 수가! 순간 두 남편이 출타한 틈을 타 아내가 불륜을 저지른 것으로 단정 짓고 아내에 대한 배신감에 분기 충전한해 그는 부엌에서 식칼을 들고 나왔다. 그 때 순간 번개같이 뇌리를 스쳐 가는 기억의 파편이 있었다. 바로 7천5백원에 산 서울 노인의 지혜였다.
방에 들어온 李씨는 어머니와 아내의 손을 잡고 “어머니와 처를 천만금과도 바꿀 수 없는데 단돈 7천5백원 어치의 지혜로 두 사람을 지키게 됐으니 어찌 싼 게 아니란 말입니까?”라고 했다. 언뜻 이해하기 힘든 아들의 이 말에 고부는 어리둥절해 서로를 쳐다봤다. 그 후 李씨는 서울에서 산 지혜를 명심해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성냄(분노)을 다스리는 지혜를 바탕으로 열심히 장사해 큰 부자가 됐다. 60년대를 살던 李씨가 서울에서 산 7천5백원짜리 지혜를 2015년 울산 시장에서도 살 수 있을까.
<이영조 중구 보훈안보단체협의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