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회-6. 아버지, 그 아버지의 나라(6)
2014-09-04 울산제일일보
낮에 보고 온 그 가을 산천이 너무 아름답고 쓸쓸하게 마음속에 남아 있어서 잠이 오지 않는 것이었을까. 진수라니는 밤이 깊도록 몸을 뒤척였다. 침소가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늘 혼자 드는 잠자리가 외로웠다.
벌써 십여 년째 홀로 잠을 청해야 하는 밤이, 왕의 자리에 오르고 나서 더 외롭게 느껴졌다. 낮에는 정사를 보느라 정신이 없으나 늦은 밤 잠자리에 누우면 온통 세상이 외롭게 느껴졌다. 오늘도 상수위와 이수위가 어전에 들러 후궁의 간택을 진언하다가 갔다.
옥전 선왕의 유택에 수행했던 상수위가 돌아가는 길에 어전에 들러 했던 말이다.
“아직 부왕께서 승하하시고 얼마 되지 않았는데 내 어찌 후궁을 맞을 수 있단 말인가?”
진수라니왕의 말은 궁색한 변명이 되고 말았다.
“전하 부왕께서는 전하의 비께서 감금되고 나서도 몇 번이나 새 비를 들일 것을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도 전하께서 부왕의 뜻을 끝내 거역하시지 않았사옵니까. 이제라도 후궁을 간택하신다면 오히려 부왕께 효를 행하는 길이 아니겠사옵니까?”
상수위는 애원하다시피 간청하다가 돌아갔다.
낮 동안의 이런 저런 일들이 뒤섞여 머리에 맴돌면서 잠이 오지 않았다. 부엉이는 그때까지도 쉬엄쉬엄 울어대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온몸이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것처럼 느껴졌고 눈 뜨면 캄캄한 어둠이었다.
몇십 번의 비상과 추락을 거듭하다가 어떻게 잠이 들었는데 어머니였다. 온통 억새밭이 있었다. 옥전의 억새밭 같기도 하고 고자국 거루산성의 억새밭 같기도 했다. 그 속에 어머니가 서 있었다. 일곱 살 나이에 헤어질 때 그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어린 나에게 억새꽃을 한 다발 손에 쥐어 주었다. 작은 손에서 흘러내리는 그 꽃을 억지로 내 손에 쥐어 주었다.
“전하, 이 꽃은 늙은이의 꽃입니다.”
어머니는 억새꽃으로 뺨을 간질이며 말했다.
“곧 죽어야 되는 꽃입니다. 그래서 온몸이 이렇게 하얗습니다.”
어머니는 울고 있었다.
글=이충호/그림=황효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