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 3인분과 티베트 아가씨
소고기 3인분과 티베트 아가씨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6.24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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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라는 나라는 크기가 한반도의 15배나 된다. 또한 티베트는 중국과 인접해 있다. 이 정도라면 그런대로 그 나라에 대해서 좀 아는 편이다. 보통 상식으로 느끼는 이미지는 ‘달라이 라마(Dalai Lama, 1935~)’라는 정신적 지도자가 생각나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히말라야’가 떠오른다.

몇 일전 토요일 아침 일찍, 우연히 모 방송국 프로가 보여준 한 장면이 가슴을 울린다. 송이버섯을 채취하는 산골모녀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는 프로다.

장소는 티베트 자치구의 ‘샹그릴라’라는 산골이다. 히말라야 산맥 자락에 있는 이곳은 해발 3천300m의 고산지대. 산봉우리가 480개나 된다고 한다. 이들에게 가장 큰 수입은 송이버섯 채취로 번 돈인데 하루 동안 걸어야 할 거리는 자그마치 30㎞나 된다.

주인공인 산골 아가씨는, 구리 빛 색깔의 얼굴에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여성스러움이 배어 있다. 화장이나 하고 청바지를 입었으면 정말 멋쟁이 아가씨로 요술같이 변할 것 같다. 지금까지 이 일을 12년이나 하고 있는 이 22세 산골소녀의 모습이 시청자들의 가슴을 내내 울린다. 우리로 말하면 대학 2, 3학년쯤 되 보이는 학생으로 생각하면 딱 맞을 것이다.

낡고 허름한 운동화를 신었는데도 산을 제법 잘 오른다. 우리라면 명품 캐주얼 등산화에 신축성 있는 바지를 입고 멋도 부리면서 오를 텐데…. 망태를 등에 메고 머리에는 티베트인들이 즐겨 쓰는 붉은 색 터번을 하고 있다. 올해 40년째 버섯을 따는 그녀의 어머니도 구리빛 얼굴의 베테랑 산골아줌마다. 송이버섯 채취는 그들의 주어진 삶 자체.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다. 비가 많이 오는 7, 8, 9월 우기에 채취해야 나머지 기간 동안은 근근이 살아 갈 수 있단다. 이 기간의 강수량은 일 년 중 거의 80%가 내리는데 습기를 좋아하는 버섯에게는 최적이다. 이때가 되면 남녀노소 수천 명이 송이 채취를 위해 이곳 산기슭에 모여든다. 그래서 나지막한 산에는 버섯이라곤 아예 없다. 높고 경사진 산으로 올라갈수록 많이 딸 수 있고 질 좋은 최상품도 찾을 수 있다.

산길을 오르다가 잘못해 젖은 나뭇가지에 미끄러져 다치기도 하고 심지어 죽기까지 한다. 그래서 두 모녀는 원숭이 마냥 네발로 기어오르는데 보기에 가관이다. 또한 때가 되면 끼니를 때우지만 잘 먹질 못한다. 혹시 몸이 조금이라도 무거우면 올라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기껏 치즈 몇 조각과 손수 만든 요구르트로 허기를 채울 수밖에 ….

결국 모녀가 1박 2일 극한작업을 해 채취한 송이는, 중간거래자에게 고작 272위안(약 5만원)에 싼값으로 넘긴다. 그 돈으로 세간살이 물건을 사면서 생활해나가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산골 모녀의 모습을 볼라치면 굉장한 허탈감에 빠진다. 이날 토요일 점심은 오랜만에 아내와 같이 소고기를 먹기로 약속했다. 왜냐하면 모레가 필자의 생일이고 오랜만에 단백질 보충도 하기 위해 겸사겸사 먹기로 한 것이다. 또한 내가 아는 식당은 소고기 맛도 좋고 구수한 된장찌개가 일품이라 더욱 그렇다.

공교롭게도 토요일 아침 이 프로에서, 저 멀리 타국에서 일어난 저런 처절하고 악착같은 생존투쟁의 실상을 접하게 됐다. 정말이지 이틀 동안의 극한 작업에서 벌어들인 모녀의 수입이 기껏 5만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날 약속한 소고기 식사는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그런데 참을 수 없는 필자의 식탐으로 미련없이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의외로 고기 맛은 전혀 아니었다. 게다가 옆자리에는 무례하고 무지막지한 아줌마들의 시끄러운 잡담으로 식사는 엉망이 됐다. 한술 더 떠서 고기를 먹고 난 후 맛있던 된장찌개까지 소금덩어리여서 진창이 됐다.

신이시여! 저렇게 티베트의 산골모녀같이 처절하게 번 그들의 수입이, 아니, 그 높은 히말라야 고봉에 올라가 생과 사를 넘나들면서 고생해 번 돈이, 고작 5만원입니다 ….

신이시여! 한가한 토요일 하루, 맑고 좋은 날, 그냥 편하게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무위도식하는 필자가, 아내와 같이 먹은 점심값이 소고기등심 3인분 6만6천원, 공기밥 2개 4천원, 맥주 1병3천원, 합이 7만3천원이었습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이런 못난 짓을 했으니 있을 수 없는 잘못을 한 것이지요?

성철(1912-1993) 큰스님이 평상시 말씀하시기를 “오늘 니가 한 일이 뭐꼬” 라고 한 말이 문득 떠오른다.

“예, 저는 오늘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그러면 “니놈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밥을 쳐 먹었단 말인가!” “예, 스님!” “니놈이 바로 밥 도둑놈 중에 상 도둑놈이대이, 알았나 이 새끼야!”

우리를 보고 말씀하신 것 같다. 오늘 밤은 정말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을 것 같다.

성철 큰스님! 정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진심으로 참회합니다.

<김원호 울산대 국제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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