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차차
차차차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6.23 20: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목만 보면 얼핏 춤 이야기 같지만 바쁜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차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리 집에는 자가용이 없다. 웬만큼 사는 집이면 차가 한 집에 두 대씩 있기 마련인 요즘, 나는 시대를 거스르며 살고 있다. 일 년 전 남편은 오랫동안 타고 다니던 애마를 객지에 있는 아들 녀석에게 물려주었다. 차가 없으니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어서 당장 차를 사자고 남편을 닦달했다.

그런 내게 남편은 당분간 차 없이 살아보자는 날벼락 같은 소리를 했다. 물론 내가 쌍수를 들어서 반대하긴 했지만 자가용 없이 일년을 버텨도 내가 바라던 날벼락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남편은 통근버스를 이용해서 출 퇴근을 하고 나는 여전히 뚜벅이 족으로 지내고 있다.

얄팍한 살림살이에 자가용은 돈 먹는 하마였던 것이다. 차가 없으니 생활에 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주말에 쓸데없이 외출을 안 하는 게 제일 큰 변화였다. 그러니 기름 값이 안 들고 외식비가 줄어든 것이다. 대형마트를 자주 들르던 습관이 아예 사라졌다. 어쩌다 바람 쐬러 나갈 일이 있으면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남편과 함께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를 타면 자가용을 타고 다닐 때 느끼지 못했던 묘미가 있다. 운전에서 해방되어 차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가 쏠쏠하다. 차창 밖의 풍경도 덤으로 따라온다.

내가 사는 아파트 앞 이면도로에 작은 사거리가 하나 있다. 슈퍼를 갈 때면 여유 있게 길을 건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사방을 살필 만큼 도처에서 차가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마치 8차선도로를 무단 횡단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좁은 이면도로에 개구리 주차는 예사여서 인도를 아예 차가 점령하고 있다.

나같이 걸어다니는 사람은 주차해놓은 차를 곡예하듯 요리조리 피해 다닌다. 골목길엔 아이들의 뛰노는 모습이나 담벼락 따라 피던 꽃들도 사라지고 자가용이 점령한지 오래전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거나 혹은 대기권 밖에서 보면 지구는 밤이고 낮이고 딱정벌레 같은 차들로 뒤덮여 있을 거라는 엉뚱한 상상도 해본다.

모임에 가면 자가용 없이 어떻게 사냐고 되묻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BMW를 자랑한다. 이 BMW로 말하자면 친환경 하이브리드 차보다 더 낫다. 유지비가 거의 없어서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며 대기오염으로 몸살을 앓는 지구에게 더 없이 필요한 차다. 각설하고 B는 BUS, M은 METR O, W는 Walking이라고 한다. 유명 수입 브랜드인 BMW 이니셜에 이런 깊은 뜻이 있다니… 착한 넌센스 유머가 아닐 수 없다.

혼기를 앞든 청년들은 차가 없으면 연애도 못한다고 한다. 하다못해 학교 자모모임이나 각종 모임에 장을 맡아도 차가 있어야 품위유지를 할 수 있는 세상이다. 주부들도 차가 없으면 이미 6급 장애인 취급을 받는 세태다.

여자들도 웬만하면 자가용을 몰고 다닌다. 엄마들은 대개가 아이를 픽업하거나 집안의 잔심부름을 대신하는 가족전용운전기사를 자청한다. 어떤 이들은 바쁜 와중에 오롯이 혼자만의 공간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쌩쌩 달리는 게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나만의 공간을 자가용으로 꼽는단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여전히 BMW를 이용한다. 나는 그 BMW중에서 B, 버스를 제일 많이 탄다. 버스 안은 때론 사색의 공간을 제공한다. 직장을 다니던 시절, 삼, 사십분 걸리는 출퇴근길에 3~4일 정도면 책 한권을 버스 안에서 너끈하게 읽었다.

그 뿐 아니라 사람 구경하는 재미도 버스 타는 즐거움에 배가 된다. 장날이 되면 당신 몸보다 두 배쯤 되는 물건을 싣고 버스를 타는 할머니, 이어폰을 꼽은 채 폰으로 게임을 즐기는 학생, 짐을 들거나 혹은 손주를 업은 어르신, 롤러코스터 타듯 거칠게 운전을 하는 기사아저씨, 그들을 눈여겨 보노라면 인기 연속극 못지않게 재미가 있다.

나라가 떠들썩하다.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전력대란이란 말도 자주 들린다. 에너지 과잉시대다. 기름이며 전기, 물을 있는 대로 펑펑 써대는, 나만 편하고 시원하면 그만인 세상이다. 나도 어쩌면 차가 없어서 불편한 것보다 남들 다 가진 걸 못 가져서 쪽이 팔리는지 모른다. 주변에서는 흔한 똥차도 하나 못 굴리고 산다며 ‘미련곰탱이’라고 부르지만 어쩌랴. 창피해도 쪽이 팔려도 그저 분수껏 살아야지. 차 없으면 어때. 아직은 내 튼튼한 두 다리가 있잖아. 오늘도 나는 뚜벅뚜벅 내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간다.

<박종임 수필가>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