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 밖 風情은 시민의 심상’
‘차창 밖 風情은 시민의 심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6.02 21: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동차 시대, 잘 꾸며진 경관도로가 경쟁력
해안,강변로 시야 가리지 않는 정비 필요
한삼건교수의 도시이야기
▲ 언양-울산고속도로에서 보이는 영남알프스.

내일 모레면 24절기 가운데 아홉 번째 절기인 망종(芒種)이다. 일 년 중 가장 농사가 바쁜 계절이지만 다음 절기가 하지이니 야외활동도 본격화 되는 시기다. 이런 계절이면 주말이나 휴일을 이용해서 야외로 나가는 자동차 드라이브가 즐겁다. 자동차 드라이브를 즐기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 것이 아닐까.

수년 전에 영국과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를 렌트카로 돌아 본 적이 있다. 그때 가장 큰 감동을 준 것은 고속도로나 4차선 이상의 넓은 국도보다는 왕복 2차선 지방도에서 본 풍경이었다. 어딜 가나 아름다운 마을과 전원 풍경이 펼쳐져 있어서 마을과 골짜기를 지날 때 마다 감탄사를 쏟아냈던 기억이 새롭다.

이처럼 유럽 선진국의 지방도가 아름답게 다가온 것은 우리와 다른 이국적인 풍경이 원인 일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주변 풍경에 녹아들듯이 자리 잡은 집과 마을이 있어서 그랬다고 본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자동차의 스피드, 즉 풍경을 감상하는 나의 이동 속도가 빠르지 않았기에 풍경을 더 가깝게 느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같은 풍경이라도 고속으로 주행하는 자동차에서 바라보았다면 그 느낌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우리보다 한참을 앞서서 도시화가 이루어지고 세계 최고 수준의 산업화를 이룬 그네들의 시골 풍경이 왜 우리보다 더 자연에 가까운지는 많은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미국의 경우는 1991년 연방의회에서 NSBP(National Scenic Byways Program)이 만들어지면서 연방 정부에 의해서 National Scenic Byway와 All-American Road가 선정돼 관리되고 있다. 선정 기준은 고고학, 문화, 역사, 자연, 경관, 레크리에이션 등 6가지로 이 가운데 하나를 충족하면 National Scenic Byway가 되고, 2개 이상의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는 All-American Road가 된다. 일본에는 이와 유사한 ‘풍경가도(風景街道)’라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7년 12월에 국토부가 경관도로(Scenic Road) 조성 기본계획을 수립했고, 이어서 2011년 12월에는 한국의 경관도로 52개 노선을 선정해서 발표했다. 도로 선정 당시 국토부가 정의한 ‘경관도로’란 ‘도로와 주변 환경이 어우러져 도로 이용자가 시각적·심미적으로 쾌적함을 느끼며, 전망이 좋은 곳에서 휴식을 취함과 동시에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도로를 말한다’ 고 돼있다. 이 정의를 보면 우리나라의 경관도로는 주로 시각적으로 느끼는 풍경의 질과 휴식처 정도로 파악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곳을 매주 1곳씩 돌아보라는 의미에서 52개소가 선정됐지만 우리 울산시에 있는 도로는 서울시, 인천시와 함께 단 한 곳도 선정되지 못했다.

이 글을 읽고 많은 시민들은 ‘무슨 소리냐, 울산에도 아름다운 도로가 있다’고 섭섭해 할 것으로 믿는다. 정말로 우리 울산에도 아름다운 도로와 역사와 이야기가 풍성한 길이 많다. 다만,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으면서 아름답던 많은 길이 사라진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아름답고 이야기가 풍성한 울산의 도로를 지키고 가꾸어 나가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자.

▲ 주차장이 된 간절곶.

우리나라는 제주도나 호남평야, 김해평야 일부, 강원도 깊은 산간 등을 제외하면 전국토가 대체로 산과 구릉, 골짜기 풍경이 주를 이루어 지역 간 차이가 많지 않다. 풍경에서 드러나는 차이는 오히려 바다를 낀 해안도로 라든가, 강변을 따라 난 길에서 느낄 수 있고,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도로처럼 인공적으로 조성된 가로수가 특징인 곳이 있다.

실제로 국토부가 선정한 52개 도로에는 강변, 해변, 호수 길이 압도적으로 많다.

울산의 경우도 이런 장소에서 풍경이 뛰어난 길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면 해변 도로로는 강동과 진하해안을 지나는 국도 31호선과 주전해안을 지나는 1027번 지방도, 염포해안도로 등이 있다. 강변도로로는 태화강변의 국도24호선과 남산로, 강변로, 회야강변의 진하-남창, 진하-덕신 도로가 있다.

호수를 따라가는 도로로는 회야댐을 지나는 양동-석천간 도로, 대암댐을 지나는 작동-둔기 도로가 있다. 산악풍경과 호수를 함께 볼 수 있는 대곡댐 곁의 두동면 삼정마을과 천전리각석을 연결하는 도로도 있다. 산악풍경을 보여주는 도로로는 작천정-등억도로, 상북 배내골의 69번도로가 있고, 경부고속도로 언양-삼남구간과 언양-울산고속도로는 영남알프스의 4계절 산악 풍경을 잘 보여주는 도로이기도 하다.

울산시에도 이처럼 멋진 도로가 많이 있는데도 전국 52개 경관도로에 단 한 곳도 들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이유는 울산이 관광도시가 아닌 공업도시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관심을 받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급격한 공업화를 겪으면서 아름다운 풍경이 훼손되거나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해안선이 긴 울산이지만 대부분이 공업단지에 편입되면서 마을도, 도로도 함께 사라진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세 번째는 우리 스스로가 아름다운 도로나 풍경에 대해서 아무런 가치를 두지 않았고, 그 결과 그런 풍경을 지키거나 꾸미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금부터라도 울산의 아름다운 도로를 만들어 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다. 다른 나라가 도로주변 풍경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보다 나은 국민들의 삶에 활용하고 있고, 우리 정부 역시 그런 노력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울산시민 스스로의 질 높은 삶을 위해서도 이런 노력은 필요하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지금이 시민 누구나 자동차를 가지고 있고, 언제 어디서나 자동차를 이용하고 있는 자동차시대이기 때문이다.

▲ 실개천을 이용한 큐슈다자이후의 도로디자인.

울산의 경관도로 정비는 우선 풍경이 아름다운 곳을 지나는 도로와 그 도로 연선을 풍경에 어울리도록 하는데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 주전과 강동 해안도로의 경우 현재 기존의 해변 도로보다 내륙 쪽에 4차선 국도나 직선도로가 신설됐다. 그 결과 통과하는 교통량은 우회하게 됐기 때문에 해변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차량을 위한 대비가 필요해 진다. 그들은 아무래도 해변의 풍경이나 생선요리를 즐기기 위해 올 것이기 때문에 해변풍경은 이전보다 더 해변다울수록 효과가 높아질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도로에서 바다를 편하게 조망할 수 있어야 한다. 도로와 해안선 사이에는 건물같은 인공물을 가능한 한 들이지 않고, 있더라도 높이나 볼륨이 크지 않아야 하고 형태나 색채도 바다와 해안풍경에 어울려야 한다. 가까운 포항, 부산만 해도 주전이나 강동에 뒤지지 않는 해안풍경을 가진 곳은 많다. 울산-해운대 고속도로는 부산방향 해변에 대한 접근성을 높였고, 내년이면 개통될 울산-포항 고속도로는 이제 무거동에서 정자에 갈 시간이면 포항에도 갈 수 있게 해 준다. 따라서 강동이나 주전, 진하해변이 이동시간이나 볼거리 면에서 이런 지역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길은 역설적으로 해변풍경이 물씬한 디자인이 관건이 될 것이다.

태화강변을 달리는 도로는 가능하면 사람이 많이 다녀야 한다. 승용차나 대중교통 노선이 중심이 되게 하고 산업단지의 물류 트럭은 별도의 도로를 개설해 우회시켜야 한다. 그리고 강변을 달리는 차량 속도는 낮출수록 더 많은 풍경을 보다 자세히 볼 수 있다. 도로에서 바라보는 강변풍경도 가로막혀서는 곤란하다.

필자가 수년전에 강남강변도로의 개나리를 제거해서 강이 잘 보이게 하자는 제안을 해서 반영시킨 적이 있다. 남산로의 도로변 난간같은 경우도 보다 가느다란 부재를 사용하고, 짙은 색으로 도색하면 달리는 자동차에서 강을 바라볼 때 난간을 시야에서 사라지게 해서 효과가 기대된다. 그리고 강물을 더 잘 보여주기 위해서 일부러 도로 바닥을 높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남산로도 그렇지만 아산로의 경우 노면을 지금보다 더 높이되, 현대자동차 쪽 시내방향 도로를 조금 더 높이면 울산만의 풍경이 시야에 더욱 잘 들어올 것이다.

필자는 경부고속철이나 경부고속도로에서 바라보는 영남알프스 풍경도 일품이라고 생각한다. 철도나 고속도로와 영남알프스 사이 지역을 개발할 때 그 배후에 있는 영남알프스와 조화로운 풍경을 그려 보고 이를 개발 방향에 적극 반영한다면 아름다운 풍경을 하나 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 해안도로나 강변도로에서 바라보이는 교량디자인도 다리가 시야에 들어오는 각도나 바라보는 시간이 긴 만큼 경관도로라는 관점에서 살피면 좋다.

10여 년 전 독일에서 네덜란드까지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이동한 적이 있다. 그때 도로변을 따라 끝없이 계속되는 숲을 보고 놀랐는데, 나중에 위성사진으로 보니 인공적으로 조성된 숲이었다. 지금 같은 자동차 시대에 도로연선 만큼 사람들에게 많이 노출되는 것도 없다. 도로와 도로변 풍경이 어울리는 곳이 많을수록 도시이미지도 높아질 것이다. 질 높은 도로변 경관이 중요한 이유다.

<한삼건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울산교총 부회장>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