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사용설명서
바나나 사용설명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5.28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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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전의 이야기이다. 동경의 분쿄구 어느 주택가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해외라곤 난생 처음이라 낯설기도 했지만 모든 것이 호기심 천국이었다. 실은 필자가 가고 싶어 했던 나라는 일본이 아니고 미국이었다.

그건 중학교 2학년 때 영어선생님의 영향인 것 같다. 그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올 때면 꼭 미국인을 대동하여 들어오신다. 특히 교과서 한 과가 끝날 때는 미국 선생님과 질의응답을 벌인다. 서로 의사소통이 된다 싶으면 웃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은 학생들에게 꽤나 신기하게 보였고 굉장히 실력 있는 영어 선생님으로 보였다. 꼬마 중학생이 미국을 동경하게 된 큰 이유다.

나리타공항에 마중 나온 연구소 직원의 차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부근 주택가에 들어서니 주변은 그야말로 깨끗하기 그지없다. 마치 서울 근교 신도시의 고급 주택단지 같은 느낌마저 든다. 게다가 검정색 아스팔트 위에 쓰인 하얀 글씨나 도로표지는 너무 선명하다. 그리고 단정히 자전거를 타고 가는 여학생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숙소에 도착한 날부터 필자의 고민은 다름 아닌 끼니문제였다. 다시 말하면 음식점에서 사먹어야 할지 밥을 해서 먹어야 할지 둘 중 하나다. 주택가에서 조금 걸어 나오면 도로변에 쌀, 우동, 잡화 등을 파는 가게들로 즐비하다.

연구비를 받아 생활하지만 고물가라 절약할 수밖에 없으니, 장이라도 볼라치면 먹을거리 중에 그래도 값싸고 영양 많은 식품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바로 ‘바나나’이다. 그 때도 요즈음과 마찬가지로 다른 것보다 값이 쌌고 영양가 많아서 좋기도 했다. 게다가 그대로 벗겨 먹을 수 있는 것이라 매일 즐겨 먹게 되었다.

호주에서 두 번째로 큰 주(州)인 퀸즐랜드(Queensland)는 ‘바나나 랜드’라고 할 정도로 바나나가 많이 재배된다. 그래서 많은 우리 대학생들이 워킹비자를 이용하여 바나나 농원에서 일하면서 영어도 배우고 호주여행을 가는 것 같다.

19세기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난 작곡가인 루이스 고트샥(Louis Gottschalk, 1829~1869)은 흑인의 노래 ‘바나나 나무’라는 협주곡을 발표하여 바나나를 매우 찬양한 적이 있어 관심이 간다. 이 ‘바나나 나무’는 바르게는 ‘나무’가 아니라 ‘풀’로 분류되는데 크게는 10m까지 자라나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도 자주 먹고 있지만 유럽인들은 연평균 10㎏를 먹고, 하물며 아랍인들은 41㎏나 먹어 치운다고 하니 화제거리의 과일이기도 하다.

바나나는, 기원전 327년 알렉산더 대왕이 인더스 강 지역을 걸어가다 우연히 재배되는 것을 처음으로 발견한다. 고대 인도 철학자들이 이 바나나 나무 그늘 아래에서 그들의 철학을 열렬히 논의한 것을 보면, 어쩌면 먼 옛날부터 인간과 친숙한 관계에 있는 식물임에 틀림없다.

지난 어버이날, 대구로 가는 길의 일이다. 낯익은 사람이 가족과 함께 먼 길을 가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년 자연치유에 대하여 몇 번 상담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아내와 더불어 구면인 셈이다. 그는 미국에서 자연치유를 전공하고 서울에서 개업한 중년의사로 한창 공중파를 타고 있는 진지하고 겸손한 사람이다. 이 의사와 상담을 하면 보통 1시간 정도이다. 독특한 상담방법을 도입한 그는 요즈음 꽤나 평판이 좋다.

사람의 몸이란, 면역을 기르게 되면 쉽게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현대인의 병폐는 독성물질의 체내저장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대증요법으로 ‘바나나와의 조화’를 적극 권장한다. 바나나와 브로콜리, 양배추, 당근, 토마토, 사과의 혼합이라면 그야말로 최고의 궁합으로 친다. 그는 삶아서 먹는 방법은 최고의 효능이라고 강조하는데, 이 중 브로콜리, 양배추, 당근, 토마토는 반드시 삶은 후 믹서에 갈아 식후에 두세 번 먹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한다.

이것을 일주일 정도 먹게 되면 사람에 따라서는 피부가 약간 가려운 느낌이 있는가 하면, 약간의 반점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한다. 그것은 일종의 호전반응으로써 체내에서 해독되는 과정으로 본다. 위염, 고혈압, 당뇨, 다이어트, 피부 관리 등에 탁월한 효능을 보이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까지 하다.

길이 15㎝, 열량 85㎉에 지나지 않는 바나나. 날 것으로 즐겨 먹을 수 있는 가장 오래되고 신비로운 과일이다. 이것은 또한 품귀현상이 없어서 우리 인간들이 언제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생각하면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인에게 무서운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스트레스다. 스트레스가 쌓여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독을 쌓고 있다는 말과 마찬가지다. 만약 그것을 해독시켜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바나나에서 발견한 이 놀라운 효능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황금 같은 선물이 된다면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김원호 울산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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