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낯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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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5.21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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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가족, 삼성.

삼성그룹의 이미지광고 문구다. ‘당신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다, 가족처럼 포근하며 거리감 없는 기업이다’라는 이미지를 담은 말이다. 훈훈함을 느끼게 하는 표현이다.

OK! SK.

품질도 OK, 가격도 OK, 서비스도 OK 라는 얘기일 게다. 자신감과 배려가 엿보이고 무엇보다 시원시원해서 좋다. 운율도 잘 맞춰 오래 기억되고 입에도 착 달라붙는다.

‘사람을 향합니다, SK.’ 모든 것을 한 방에 정리해버린 명문구다. 자연의 위대함을 잠깐 옆으로 밀어두면 사람이 천상천하 유일지존이 아니겠는가. 10점 만점에 10점이다.

‘사람이 미래다, 두산.’ 천만번 지당하신 말씀이다. 누가 감히 이설을 달겠는가. 이보다 더 좋은 말이 앞으로 나올 수 있을까 걱정될 정도다. 앞날이 훤한 기업이다.

카피(Copy:광고문구) 하나가 사람을 짠하게 하고 웃게 하고 감동시킨다.

가족, 얼마나 가슴 설레게 하는 말인가. 온갖 용서와 배려와 위로와 사랑이 있는 곳, 바로 가족이 아닌가. 자애로움이 넘쳐 동무처럼 여겨지던, 세상 모든 어린이들의 영원한 멘토였던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던 곳,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재롱둥이 손자들이 있던 곳, 바로 가족이다.

친밀도 떨어지고 이질감만 높아가는 이웃들과 공동체, 의지하고 위무 받을 데는 사라지고 살벌한 경쟁만이 판치는 사회, 다정다감이 끼어들 공간조차 없는 단핵조직으로, 가족의 장점들이 더 필요한 세상이 되었건만 정작 어릴 적 가족모습은 기억 속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가족과 함께 사람의 가치를 이야기해도 최고점수를 받는다.

인권이 제 주소를 찾은 이래, 어느 시대 어느 곳을 가리지 않고 사람이 소중하지 않은 적은 없었지만 지금처럼 사람값이 낮아진 경우도 없다. 찰리 채플린의 부품으로서의 인간을 지나고 일개미로서의 인간을 거쳐, 노동에서 배척된 인간, 파산자 인간의 시대를 맞고 있다. 거대자본의 창궐과 탐욕으로 모든 것을 잃어가며, ‘신노예시대’라는 막장만을 앞에 둔 듯하다.

사람과 사랑을 얘기하지 않고는 카피를 만들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사람의 본원적 가치가 존경받는 장면이 등장해야, 감동을 주고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사람을 향합니다, 사람이 미래입니다’라고 말해도 사람값이야 오를 리 없겠지만, 한 편 광고로서는 성공한다. 기업이미지도 순화·고양된다.

카피들을 곰곰이 살펴보면 현실의 대척점에 있는 세상을 그리고 있다는 공통점을 볼 수 있다. 카피를 뒤집으면 세상의 실상이 보인다.

사랑을 노래하면 증오가 꽉 찬 세상이고, 사람을 얘기하면 물신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광고문 주제가 사람과 사랑, 가족으로 모이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님에도 거부할 수도 없다. “서로를 더 증오하십시요”나 “쩐(錢)의 세상에는 희망이라고는 전혀 없습니다”, “더 짜낼 데는 사람밖에 없습니다”라는 카피를 내보낼 수 없는 까닭이다.

재벌기업의 실체도 따로 있다.

노동력은 무진장이니 쓰러질 때까지 사람을 부리려 하고, 이를 막아서는 노조를 증오한다. 내 자식과 사돈의 8촌까지 먹고 살 걱정 없으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무법천지 쩐의 세계로 세상을 끌고 간다. 곳간에 유보금을 엄청나게 쌓아두고도 경제5단체를 앞세워 경제민주화의 완급 조정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기업들은 헛된 이미지가 아닌 실체로 승부하고 또 국민에게 다가와야 한다. 실루엣 미인은 민낯미인 앞에 서지않는 법이다.

<임상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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