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보통학교, 소학교, 국민학교, 초등학교(3)
제7화 보통학교, 소학교, 국민학교, 초등학교(3)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6.10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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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밖 세상은 놀라움 가득한 놀이터

늑막염으로 감금… ‘꼴지’성적표 받아

철저한 예습·복습으로 눈에 띄게 향상

집안 어른들의 보물처럼 보호를 받고 생활하다가 보통학교에 입학하여 또래 아이들과 어울릴 때, 얼마나 신기하고 짜릿했을까? 그 느낌은 한 30여년 전에 외국여행을 하면서 한국 사람을 만났을 때의 반가움을 떠올리면 된다. 우선 말이 통하는 것이 반가움의 출발이다. 아이들끼리의 말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동강 선생이 보통학교에 입학하여, 분명히 그때도 아이들의 ‘제는 부잣집 귀염둥이’라는 특별 대접이다. 즉, 잘 대해주었을 터이니 재미있게 노는 데에는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어린 동강의 눈에 ‘담장 밖의 세상은 놀라움이 가득한 놀이터’였다. 따라서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며 친구들과 놀다가 땅거미가 질 때에야 집으로 들어갔으니 어린 나이에 누적된 피로로 덜컥 병이 나고 말았다.

사실, 당시로서는 여간 고치기 힘든 늑막염을 앓기 시작한 것이다. 늑막염은 폐와 늑골 사이에 있는 늑막(肋膜)에 염증. 일종의 상처가 생긴 것이다. 몸이 허약한 아이나 운동을 심하게 하여 폐와 늑막의 심한 마찰 때문에 염증이 생기는 것이다. 지금이야 병원에서 곧 치료를 하지만 70여 년 전의 시대 상황으로는 가만히 누워서 지내며 상처가 저절로 치료되듯이 그냥 아물어 들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한 밤중에 미열이 나고, 체중도 눈에 띄게 줄어, 늑막염이 생겼음을 알고 어른들이 집안에 감금시켜버렸다. 단지 영양을 잘 공급하고 피곤하지 않게 하고(폐의 운동량을 줄여서 늑막에 자극을 줄이는 것) 안정을 취하는 것이니 당연히 학교는 휴학한 것과 같은 형편이었다. 이로 인해 신경쇠약까지 생겼으니 이것이 훗날 고독을 씹으며 사색하고 문학에 심취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하여간 몇 개월을 학교에 가지 못했으니 배운 것이 없고, 이 상태에서 다시 학교에 가서 시험을 보고 성적표(지금은 수, 우, 미, 양, 가도 없애버렸지만, 그 때의 성적표에는 100점 만점의 각 교과 점수, 전체 평균, 학급별 석차가 기록될 때, 35명중의 35등, 35/35 으로 기록되었다.)를 받아든 동강 선생은 오기가 생겼다. 최하위(最下位), 한자어를 쓰면 점잖게 보이지만 쉬운 말, 놀리는 말로는 반에서 꼴등을 한 것이다. 그때도 그랬고 훗날 동강종합병원을 울산에 처음 설립할 때도 그랬던 것은 굳은 결심을 한 것이었다. 당시로서는 보통학교 1학년 학생이 예습을 하고 복습을 하기가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몸이 나았으니 밖에 나가 놀기가 바빴던 나이었다. 이런 유혹을 물리치고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하여 성적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반 아이들도 심하게는 무슨 술수가 있었는지 의심할 정도였다. 졸업할 때 담임선생님만은 동강의 실력을 인정해 주었다. 그래서 서울로 입학시험을 보러 갈 수 있었다. 최근까지 동강 선생을 모셨던 사람들(이진관 의료원장, 이영자 간호이사, 이진흥 사무국장) 모두가 동강 선생뿐만 아니라 그 집안이 머리가 좋다고 회고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타고난 지능이 높지 않고서는 예습과 복습으로 수재소리를 들을 수는 없다. 전 학년 1등으로 졸업하면 수재(秀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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