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의 함정
베스트셀러의 함정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5.20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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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Best Seller)’란 짧은 기간에 많이 팔린 책을 말한다.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사상가이자 출판업자였던 디드로(Diderot, Denis)가 자신이 펴낸 ‘출판업에 관한 역사적 정치적 서한’에서 출간과 동시에 많이 팔리는 베스트셀러와 오랫동안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Steady Seller)’의 개념을 처음으로 거론했다.

베스트셀러라는 말이 처음 쓰이기 시작한 것은 1895년으로, 미국의 월간문예지 ‘북 맨(Book Man)’이 1개월간 팔린 부수를 조사, ‘베스트 셀링 북스(Best Selling Books)’라는 이름으로 신간서의 목록을 게재한 데서 비롯됐다. 그 뒤인 1912년에는 ‘퍼블리셔스 위클리(Publishers Weekley)’에서 이러한 베스트셀러를 두 개의 계열, 즉 픽션과 논픽션으로 나누어 10위까지 발표했다. 20세기 초 베스트셀러는 이른바 패스트셀러(Fast Seller)였다. 출간 즉시 불티나게 팔리는 책을 의미하던 이 말은 시간이 지나면서 빅셀러(Big Seller)니 밀리언셀러(Million Seller)니 하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한 편의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요인을 분석하는 일은, 마치 어느 상장회사의 주식이 제일 투자가치가 높은 것인가를 예견하는 일만큼이나 까다롭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출판물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우도 있으며 비정상적인 유통 방식을 통해 베스트셀러의 목록에 오르는 출판물도 더러 있다. 이러한 사실은 현대사회의 다양한 욕구와 복잡한 삶의 방식 및 그것을 조율하는 보이지 않는 힘 등에 기인하는 것이다. 즉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가장 핵심적인 속성은 상업성과 상품성이기 때문에, 진지하고 성숙한 글쓰기와 거리가 먼 사례들이 종종 눈에 띈다.

그간 국내 대다수 출판사들은 목숨 걸고 베스트셀러에만 매달렸고 그 과정에서 출판인의 양심은 뒷전으로 밀려난 면도 없지 않았다.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해 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광고를 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자사에서 펴낸 책을 다량 구입, 이른바 사재기를 통한 베스트셀러 조작에 나서기도 했다.

얼마 전 모 방송사 시사프로그램에서 밝혀진 베스트셀러 순위 조작 의혹은 출판계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냈다. 책을 사는 주체가 독자가 아니라 출판사라는, 이 웃지 못 할 행위인 ‘도서 사재기’는 1990년대부터 2~3년 주기로 반복되는 고질적인 병이다. 이 보도로 한국문단의 대표 작가 황석영 씨는 문제가 된 자신의 저서에 대한 절판까지 선언했는데, 문제의 J출판사는 이미 같은 일로 벌금을 낸 이력이 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한국출판인회의는 2005년 10월부터 두 달간 서점 판매 현황, 현장 조사 등을 거쳐 사재기 의혹이 있는 책들을 찾아낸 뒤, 2006년 새해 벽두 교보문고, 영풍문고 등 7개 대형 서점이 매주 발표하는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문제의 책을 제외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사재기로 지목한 책과 출판사들은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다. 출판계 자정 차원에서 업계의 반성을 촉구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출판계의 자정 노력은 근절되지 않았다.

일단 베스트셀러에 올려놓고 보자는 일부 출판사들의 행태는 계속됐다. 게다가 온라인서점 베스트셀러 순위는 조작이 손쉬워 출판사들은 유혹에 더 취약해졌다. 출판사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각자 배분받은 책을 사들이도록 하는 고전적 수법은 물론, 판매 부수를 늘리기 위해 서평단을 모집한 뒤, 띄우려는 책을 인터넷서점에서 구입케 하고 비용을 보전해 주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는 분명 좋은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힘이 있는 콘텐츠인 것이다. 그럼에도 회의감이 드는 이유는, 자연발생적이 아닌 만들어진 상품이라는 이미지가 짙기 때문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베스트셀러에 실망하지 않으려면 책을 잘 고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즉 남들이 다 보니까 나도 본다는 식의 독서법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일단 베스트셀러가 되면 너도나도 베스트셀러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우리네 교양 사회의 불편한 진실이다.

베스트셀러로 알려지면 무조건 대단하게 여기고, 읽지도 않으면서 서재 장식용으로 사들이는 일부 독자들의 도서구입 의식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상당수 출판사들의 ‘베스트셀러 만들기 사재기’가 일부 독자들의 ‘베스트셀러 책 구입하기’와 무관치 않다는 얘기다. 이번에 드러난 사재기 파문을 접하면서 ‘베스트셀러란 무엇인가’라는 해묵은 질문을 다시 떠올려 본다.

<김부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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