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장(腕章)
완장(腕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5.20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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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장(腕章=팔띠)’의 사전적 의미는 ‘신분이나 지위를 나타내려고 팔에 두르는 표장(標章)’이다. 한데, 그 완장이 요즘 한창 화제다.

‘윤창중 사태’가 불거진 직후 윤흥길의 장편소설 <완장>이 인터넷에 떴다. 한 누리꾼이 대뜸 이렇게 반응했다. “혹 윤창중이 주연인가요?” 다른 누리꾼이 토를 달았다. “완장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 일제 때는 순사, 6·25 때는 빨간 완장 찬 빨갱이, 요새는 신뢰하지 못할 권력기관….” 축구나 배구 팀 주장선수가 차는 그것과는 달리 완장에는 이제 부정적 의미가 더 많이 새겨져 있다.

소설 <완장>의 묘미는 짙은 풍자·해학성과 날카로운 비판의식에 있다. 그 진득한 맛 때문에 TV 드라마의 단골 소재가 되고, 그 인기 덕분에 '권력에 대한 집착 또는 과시욕'을 뜻하는 보통명사가 된다. 전북 김제시 백산저수지를 배경으로 1980년대 초에 빛을 본 <완장>의 그 어떤 내용이 세인의 입방아를 돌리게 하는 것일까. 간추리면 대충 이렇다.

<동대문시장의 뜨내기장사를 그만두고 고향마을에서 한량 짓이나 하던 주인공 ‘임종술’에게 ‘저수지(=널금저수지) 감시원’이란 감투가 느닷없이 떨어진다. 완장을 차고 우쭐거리면서 온갖 패악 다 부리던 그에겐 속말로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한날은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다. 때마침 놀기 삼아 낚시질 왔던 사설저수지 주인 ‘최사장’ 일행에게 ‘완장 끗발’이 허세를 드러낸 것이다. 최사장 눈 밖에 난 그는 끝내 감시원 직을 뺏기지만 권력의 단맛은 그를 더욱 완장에 집착하게 만든다. 하지만 ‘완장 허세’에도 끝장은 있는 법. 타는 가뭄이 저수지의 물을 빼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고, 더 이상 할일이 없어진 그는 완장을 저수지에 몰래 팽개치고 마을을 떠난다. 완장의 허황됨을 일깨워준 작부 ‘부월이’와 함께….>

소설 <완장>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평자 A씨는 “완장은 권력의 속성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부조리함을 우스꽝스럽게 풍자한 소설”이라고 했다. 평자 B씨는 “부조리한 한 인간의 행적과 몰락을 농반진반(弄半眞半)의 살아있는 정신으로 그린 작품”이라고 했다. 평자 C씨는 “완장에 집착하는 주인공의 어리석음을 통해 한국적 권력의 의미와 그 폐해를 고발한 작품”이라고 했다.

‘하빠리 권력’의 상징인 ‘완장’ 하나만을 믿고 ‘마을 독재자’ 모습으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두른 주인공 임종술에겐 어떤 사자성어가 어울릴까. 기고만장(氣高萬丈), 안하무인(眼下無人), 오만방자(傲慢放恣)… 어느 하나라도 뺀다면 서운할 노릇이다.

‘완장 의식’이란 말이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필시 윤흥길의 <완장>에서 끄집어냈을 것이고 ‘윤창중 사태’가 그 불씨를 되살렸을 법하다. 딸 나이 또래의 여성을 성희롱했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윤 전 청와대 대변인한테는, 그의 언행으로 미뤄, 호가호위(狐假虎威)에다 배은망덕(背恩忘德)이란 고사성어를 더 갖다 붙여도 무방할 것이다.

‘윤창중 사태’ 전 일이지만 ‘수도권일보’의 윤 모 부국장(경기도 성남시 주재)은 지난해 9월 ‘퇴출돼야 할 완장’이란 칼럼을 지면에 올렸다. “완장이라는 단어는 지자체선거 후 종종 등장하곤 한다. 선거 때가 다가오면 표를 얻기 위해 굽실거리다가도 당선과 함께 강력한 지배자로서 신분의 위력을 십분 발휘하곤 한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호통도 서슴지 않는다.… ‘사람이 변해도 저렇게 변할 수 있을까’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완장’의 힘을 맹신하고 ‘안하무인’격 행동을 일삼는 인사들이 활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남시의 현상만은 아닐 것이다. 정치계의 일만도 아닐 것이다. 당장 나부터 ‘완장 의식’에 사로잡혀 손가락질 받을 언행을 일삼은 적은 없었는지, 가슴에 손부터 얹고 볼 일이다.

<김정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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