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한과 대면소통했던 대마도는 우리땅”
“마한과 대면소통했던 대마도는 우리땅”
  • 강은정 기자
  • 승인 2013.05.0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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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 박사 - 대마도 되찾기 운동 주창
“‘하와이는 미국 땅, 대마도는 일본 땅,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노래했지만 틀렸다. 대마도는 잃어버린 우리 땅이다.”

남구 야음동에서 대마도 되찾기 운동의 중심에 선 김동수(75)씨를 만났다. 지난달 30일 부산에서 열린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는 심포지엄이 열리면서 대마도의 반환 운동이 열기를 띄고 있다.

김동수씨는 경영학 박사이자 관세사이다. 전 울산항만공사(UPA) 항만위원장도 역임했다. 전 심완구 울산시장과 현 박맹우 시장의 해양관련 정책 자문위원도 수행했다. 울산 발전을 위해 항만 특화를 주장한 사람도 김동수 박사다.

그가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고 주장했다. 얼토당토 않는 주장을 할 리가 없었다. 대마도가 우리나라 땅이라고 외치는 이유가 궁금했다. 2시간 동안 이어진 인터뷰는 김동수 박사의 대마도 연구의 초반부터 시작됐다.

김동수 박사는 “1961년 해양대학을 졸업한 후 세관 공무원으로 근무할 당시 일본으로 출장을 자주 다녔는데 동료들이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는 이야기를 계속했다”며 “역사 관련 책과 자료를 모아보니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는 증거들이 속속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때가 대마도에 관심을 가지게 된 시작점이었다.

그는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은 이승만 대통령의 말이었다고 말했다.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이 집권한 후 사흘만에 공언한 첫 마디는 ‘일본은 속히 대마도를 반환하라’라는 것이었다.

김 박사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 사실무근인 이야기를 할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때부터 모은 자료를 분석해보니 이승만 대통령의 주장이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더라”는 그의 말엔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는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김 박사는 대마도를 귀납법으로 연구했다. 역사적인 사실을 종합하다 보니 한 가지 사실이 나왔다.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한 세종실록에 ‘대마도는 우리 땅이다’라고 기록돼 있으며 1750년대의 해동지도에도 대마도를 우리 땅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마도 원주민은 우리 한민족이라는 사실도 전했다. 해안지대 사람들이 조류에 따라 이주해 대마도에 유입됐다는 것이다.

문화적인 기록도 설명했다. ‘대마(對馬)’는 삼한시대 마한(馬韓)과 서로 마주보며 한 쌍을 이뤄 서로가 대화를 하던 섬이란 뜻이라고 했다. 한민족이 살았다는 증거다. 또 우리나라 송(宋)씨가 종(宗)씨로 성을 바꿔 대대로 대마도를 통치했다고 설명했다. 이 종씨의 시조묘는 부산 양정 화지산에 있다고 했다. 일설에는 울산의 두왕동이라는 주장도 있다.

역사적인 기록이 무수히 많은데 왜 대마도는 일본 땅이 됐는지 궁금했다. 일본은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의 혼란스러운 시기를 틈타 은근슬쩍 자기네 땅으로 가져갔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 후 일본은 대마도를 뺏기지 않기 위해 조선과 일본의 어린 학생들에게 ‘대마도는 일본 땅’이라고 외치며 세뇌시켰다”고 덧붙였다.

대마도에는 몇 번 다녀왔는지 궁금했다. 많이 가봤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한번 뿐이라고 답했다. 대마도를 관광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한국인이다. 그들은 대마도에서 일본을 느끼기 보다 한국의 흔적을 찾는다. 덕혜옹주의 결혼 봉축비, 최익현 선생의 순국비, 조선통신사비 등을 눈으로 확인한다.

그는 “대마도는 부산에서 불과 50㎞ 떨어져 맑은 날 육안으로 보이는 곳”이라며 “대마도 주민들은 ‘새벽에 귀 기울이면 울산, 부산의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할만큼 가깝다는 것을 청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박사는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는 일본의 ‘쿠니비키(國引) 신화’를 들려줬다. 한국과 마주보는 일본의 한 지역인 시마네현에서 유래되는 쿠니비키 신화는 ‘신이 다른 지역의 땅을 밧줄로 묶고 끌어와 영토로 삼았다’라는 이야기다. 섬 나라의 특성이라고 했다.

김 박사는 “신화로 미뤄 짐작컨대 일본인들은 섬을 자기네 땅으로 가져가려는 의식이 지배적”이라며 “일본이 대마도는 물론, 독도까지 삼키려는 속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대마도를 잃지 않기 위해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우긴다는 것이었다.

김 박사는 “일본은 태평양전쟁 패전 후 나라를 일으키면서 미래 수산자원과 어업이 중요하다는 인식에 일찍 눈떴다”며 “일본이 대마도를 은근슬쩍 자기네 땅으로 가져가려 하자 이승만 대통령이 반환하라고 촉구하면서 벌벌 떨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의 대마도 반환을 60차례 요구했으며, 임진왜란의 배상까지 요구했다. 일본은 독도영유권을 주장해 대마도를 논란대상을 삼지 못하도록 전략을 세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미국에 제시한 지도에 ‘대마도는 한국령’이라고 적혀있어 우리 땅이라는 근거를 일본이 입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이 1862년에 오키나와 남쪽 태평양에 있는 ‘오가사와라’라는 섬을 미국으로부터 공인받을 수 있는 근거로 내놓은 지도가 바로 ‘삼국접양지도’(하야시시헤이 제작, 프랑스 어판)였다”며 “그 지도를 살펴보면 대마도가 한국영토로 표기돼 있다”고 밝혔다.

또 “나를 비롯한 모든 한국 사람들은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객관적 증거 자료를 가지고 말한다”며 “이런 사실 때문에 일본이 대마도를 감추기 위해 독도를 부각해왔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이승만 대통령을 ‘해양 정치가’라고 표현했다. 김 박사는 “이승만 대통령은 해양자원과 영해가 중요하다고 인식했다”며 “이승만 대통령의 평화선 선포는 독도를 한국 땅으로 공포하면서 해역 구분을 확실히 하고 수산자원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2년 ‘평화선’을 발표하면서 독도는 우리 땅임을 확실히 했다. 이를 통해 일본의 어업분쟁을 입막음할 뿐만 아니라 연안 침투를 방지해 세계 각국의 영해확장에 대처하기 위한 선언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그때 이승만 대통령이 평화선을 선언하지 않았으면 현재 독도도 일본 땅이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라며 “생각할수록 이승만 대통령의 과감한 영토 회복의 혜안에 머리 숙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일본에서 일어난 한 시위 단체의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은 ‘대마도를 무슨 일이 있어도 사수하자!’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대마도가 자기네 땅이라면서 ‘죽음을 무릅쓰고 지키자’라고 외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역설’이라고 주장했다. “자기네 땅이라면 가만히 있어도 모든 사실들이 자기네땅임을 말해 줄텐데 죽음을 무릅쓰고 지키자는 것은 뺏길까봐 두려워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무의식속에 대마도를 뺏어왔다는 인식이 깔려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과거 대마도 반환 촉구 운동이 벌어졌을 때에도 미국 손을 내밀며 도와달라고 아부적 외교를 펼친 것에서도 명백히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그는 끝으로 대마도의 반환 요구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일 전후 한국 정부가 좀 더 국제이슈화의 노력을 기울이고 일본처럼 대응을 했더라면 대마도는 오래전 우리 땅이 됐을지도 모른다”며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독도를 일본이 떠들 때마다 더 큰소리로 ‘우리의 땅 대마도를 한국에 반환하라’고 외치자”라고 말했다.

글=강은정 기자·사진=정동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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