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편한 도시가 경쟁력이다
걷기 편한 도시가 경쟁력이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5.05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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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 중심 도시디자인
한삼건 교수의 도시이야기

통계자료를 보면 울산이 읍에서 시로 승격됐던 1962년의 울산시 등록자동차 수는 192대였다. 그 중에 대중교통 수단인 택시가 12대, 시내버스는 16대가 있었다. 그런데 2009년의 등록자동차 수는 42만7천610대로 만 47년간 무려 2천227배나 늘어났다. 자동차가 귀했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 세계에서 가장 자동차가 붐비는 도시에서 살고 있다. 사실 도시디자인은 특정 장소나 시설을 그저 멋있고 예쁘게 디자인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안전하고, 사람을 쾌적하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어야 한다. 그 가운데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바로 자동차로 인한 도시문제를 해결해 주는 도시디자인 방안이다. 자동차가 없던 시절에는 문제도 아니던 것이 지금 우리 앞에 심각한 도시문제가 된 것이 있으니 바로 보행 안전문제다. 앞의 글에서 보행자를 위한 도시디자인이 왜 필요한지 살펴보았는데, 이번 글에서는 여러 사례를 통해서 보행자들에게 안전하고 기분 좋은 도시로 거듭날 수 있는 디자인 방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 도쿄 오다이바에 있는 공중보행로.

우리보다 한참 먼저 도시화를 경험하고 자동차시대를 맞았던 유럽이나 일본의 도시는 일찍부터 자동차와 보행자가 서로 조화롭게 도심을 이동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안을 실천해 왔다. 이들을 돌아보기 전 먼저 기억할 것은 그네들의 도시가 우리네 도시보다 도로 사정이나 주차사정이 결코 좋지 않다는 점이다. 일본은 에도(江戶)시대부터 도시상업이 발달하면서 전통도시의 도시화가 크게 진전됐는데, 그 때문에 보행과 수레에 맞는 도시는 완성됐지만 자동차 시대에는 영 맞지 않는 도시가 되고 말았다. 서구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자동차 시대를 맞으면서 일본보다 더 풀기 어려운 숙제를 하나 안고 있었다. 바로 층수가 높고, 석재나 벽돌로 지어진 건축구조가 그것이다. 예를 들어 주차장이나 도로 하나를 만들려고 해도 덩치가 크고 무거운 건물이 장애물이 되곤 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본격적인 경제부흥과 자동차 시대가 도래한 1960년대 초반부터 유럽 여러 나라의 도로나 광장은 자동차로 넘쳐났고, 보행자 안전은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됐다. 일본의 경우도 1964년 도쿄올림픽 개최가 결정되면서 차고지증명제가 도입되고, 도로확장과 신설이 봇물을 이뤘지만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자동차 때문에 늘 부족했다. 결국 그들의 선택은 도심공간에서 자가용 승용차를 몰아내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자가용의 도심 진입을 불편하게 하거나 대중교통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비용을 지불하도록 했다. 이탈리아 각 도시의 도심에 산재한 광장을 차지했던 자동차가 사라지고 다시 예전처럼 사람이 주인공이 된 것도 이런 정책 덕분이었다.

▲ 기타큐슈 역전 공중보행로.

한편, 새로 계획된 도시나 도심 외곽의 신 개발지는 처음부터 자동차와 사람의 관계설정을 달리했다. 1994년 기본설계 당시에 필자도 관여했던 일본 간사이공항 앞 린쿠타운이라는 계획도시를 보면, 보행자는 지상이 아닌 공중에 전용 데크를 만들어서 이것을 이용하게 하고, 지상의 도로는 주로 자동차만 이용하도록 했다. 이렇게 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사람들에게 안전하고 쾌적한 보행공간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일반적으로 도로는 일정한 폭을 넘으면 차도와 분리해서 인도를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안전한 보행을 보장받기는 어렵다. 우선 보행자 가까이에서 자동차가 빠른 속도로 달려서 늘 위험이 상존하는데다가 인도 위에 있는 수많은 장애물이 보행을 방해한다. 전봇대, 가로수, 각종표지판, 전력박스, 버스정류장, 불법 광고물 등 헤아리기 힘들다. 특히 차도를 차지한 것도 부족해서 보도로 올라 온 자동차다.

자동차와 사람이 함께 있어서 불편한 점은 또 있다. 길을 건너야 할 때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 도로를 건너면 ‘무단횡단’이 되니 불편은 물론 법적인 책임소재까지 뒤따른다. 이런 문제를 한번에 해결하면서도 보행자가 안전하고 쾌적하게 걸을 수 있게 한 것이 바로 보행전용도로다. 울산에서는 아직 입체적인 보행로는 없고, 일반 소로 가운데 보행자만 이용할 수 있게 한 것이 문수로나 삼산로 주변 등에 있고 중구 도심의 아케이드 거리도 여기에 속한다. 이런 길은 자동차가 다니지 않아 더 없이 안전하고 좋지만 길이가 짧고 해당 구간 밖으로 연계되기 힘들어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 시모노세키에 있는 공중보행로.

사실 자동차가 없었던 시절의 도로를 생각해 보면 사람이 주인공이었다. 중구 학성로나 문화의 거리, 구 국도 7호선 같은 도심 도로도 1970년대 이전에는 사람들이 도로 중앙을 맘대로 활보했다. 필자는 늘 ‘그렇다면 현재의 도심에서도 예전처럼 사람이 도로 가운데를 활보할 수는 없을까’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

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도심 구간 전역에 보행자용 도로를 만들면 된다. 예산 문제와 효율성도 따져야 하니 보행환경이 아주 열악한 도심의 취약지역부터 도입하면 좋을 것이다. 이쯤에서 독자들은 ‘그럼, 어디에 어떻게 만들 거야’라고 질문을 할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현재 도심지역 도로는 시설물로 포화상태이고 해당 도시에서 토지가격도 비싸기 때문에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방법은 있다. 그것은 현재의 도로를 이용하되, 지하와 공중을 모두 활용한 입체적 접근법이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울산시내의 도로 상공과 지하를 이용해서 보행자 전용도로를 만들면 된다. 세계 여러 도시를 보면 이런 예는 비일비재하다. 먼저, 캐나다 몬트리올은 겨울에 눈이 많고 추운 지역이기 때문에 지하보행 공간을 정비했다. 지하 보행로는 긴 겨울 동안 춥지도 않고, 눈이 많이 내려도 막히지 않고, 또 눈에 발이 빠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홍콩섬에 가보면 중앙페리터미널에서부터 도심주요빌딩 사이에 공중 보행로가 길게 연결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본의 기타큐슈(北九州)시 도심 고쿠라(小倉)역 북쪽 신개발지에서도 공중보행로를 만날 수 있다. 역에서 컨벤션센터를 비롯한 주요 항만시설까지 지붕이 있는 공중보행로가 연결돼 도로로 내려갈 필요 없이 목적지까지 편하고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다. 오로지 사람만이 편하게 걸을 수 있다. 오사카에 가면 JR철도 환상선 등과 케이한(京阪)전철이 지나는 교바시(京橋)역에서 부도심인 OBP(OSAKA BUSINESS PARK)까지 역시 공중 보행로가 연결돼 있다. 이 보행로는 철도, 하천, 도로 등을 모두 통과하지만 아무런 장애 없이 역에서 OBP까지 도착할 수 있게 해준다. OBP의 이런 모습이 갖추어진 것이 지난 1980년대 후반이니 벌써 20년의 시간이 지났다.

우리 울산에서는 삼산동 롯데와 현대백화점 일대, 신정동 공업탑일대, 북구청 부근 등에 이런 입체 보행로가 도입되면 특히 효과가 높을 것 같다. 현대백화점 일대에 필요하다면 삼산로나 삼산중로 상공에 보행로를 만들면 된다. 공업탑은 작년에 울산시가 주관한 도시경관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 원형 보행데크를 제안한 것인데, 이를 활용하면 효과가 높을 것이다. 공업탑 주변은 간선도로 5개 선이 모여 있고, 상업적 지구가 형성돼 있다. 여기에 시내버스와 시외버스 노선이 집중돼 있고, 학교, 울산대공원, 박물관 등도 모여 있다. 그런 한편 주차장은 부족하고, 좁은 이면도로는 불법 주정차 차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공업탑은 우리나라 근대화의 상징공간이지만 매일 수 만대의 차량이 돌아가는 교통광장 가운데 있어서 구경 한번 하러 가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게다가 자동차 중심으로 구성된 공업탑 로터리는 직경이 150m 정도이지만 둘레는 이것의 4~5배 이상 길어서 한 바퀴 도는 일이 쉽지 않다. 왜냐하면 도로를 건널 때 마다 신호대기를 해야 하는데, 횡단보도는 차량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로터리 둘레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렇다. 만일 이곳에 원형 보행데크가 걸린다면 아무 방향으로나 최단거리로 접근할 수 있다. 이것이 가설되면 보행이 활성화 되고, 주변 상권 활성화에는 특효약이 될 것이다. 주차장도 대공원 동문주차장을 활용하면 된다. 그리고 덤으로 얻는 것은 어지러운 가로 경관에 질서를 잡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수년전 관련위원회에서 이 제안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부결시키고 말았는데, ‘건물이 가려진다, 육교를 없애는 것이 대세인데 웬 육교냐’ 하는 것이 반대 이유였다. 이것이 궁금한 독자는 구글 위성으로 중국 상해 푸동 동방명주 탑 앞에 있는 원형 육교를 보라고 권하고 싶다.

또 효과가 예상되는 곳이 북구청 앞 산업도로다. 이곳에는 북구청, 북구문화예술회관, 북구보건소, 오토벨리 복지센터, 시티병원, 강북교육청, 동울산세무서, 농수산물유통센터 등이 모여 있다. 말하자면 북구의 중심업무지구, 또는 행정타운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산업도로 상에 있는 상방사거리와 세무서앞 횡단보도는 그 거리가 650m나 떨어져 있고, 버스노선도 많지 않고 특히 산업도로를 사이에 둔 반대편으로 건너기가 아주 불편하다. 이런 곳에 원형의 공중보행데크가 걸리면 두 개의 간선도로로 갈라진 4개 블록을 하나로 묶어 주민 접근성을 비약적으로 높여줄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도로를 만들고 주차장을 만드는데 모든 행정력과 예산을 집중하고 있다. 이제는 차가 아닌 보행자를 위한 예산과 행정력을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생태도시, 창조도시, 디자인도시를 표방할수록 발상의 전환을 통한 디자인 방안이 논의될 필요가 있다. 도로에는 고가도로도 있고 지하도로도 있다. 이제는 보행로도 공중이나 땅 속, 그리고 강위로 사통팔달 뻗어나갈 수 있음을 정립하고 보행자, 즉 사람을 위한 도시 만들기에 힘을 기울일 때다. 걷기 편한 도시를 만드는 일이야 말로 도시디자인의 가장 기본적인 목표가 돼야 한다.

한삼건 울산대 건축학부 교수, 울산교총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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