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에 보내는 조언
문화재청에 보내는 조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5.0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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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은 직접 두는 사람보다 옆에서 훈수하는 사람에게 전체 판 형세가 더 잘 보인다. 어느 구석 패(覇)때문에 어떤 대마(大馬)가 죽는지 알 수 있고 패세(敗勢)를 뒤집는 방법도 한 눈에 쏙 들어온다. 하지만 정작 판에 몰입해 있는 당사자 눈엔 바둑판과 검고 흰 돌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반구대 암각화 보존대책을 두고 울산시와 시소게임을 벌이고 있는 문화재청의 모습이 꼭 그 형상이다.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걱정스러울 정도다.

문화재청은 현재 반구대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패(覇)를 잘못 쓰고 있다. 무엇보다 지방과 중앙이란 이분법을 택하고 있는 게 가장 큰 흠이다. 이런 양분법 때문에 지금 울산시와 문화재청이 대립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문화재 문제가 자칫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부처의 불협화음으로까지 이어질 형국이다.

지난 달 11일 문화재청이 중앙 언론기자들을 대거 대동하고 반구대에 나타나기 전 까지만 해도 이렇게 양분되진 않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 문화재청이 보인 행태는 저돌적이라 해야 할 정도다. 중앙언론을 대동한 이유는 지역 언론과 대립케 하겠다는 의도였을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문제를 전국적 관심사로 끌어올려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겠다는 것이었다. 또 중앙언론을 이용해 지역 언론에 대해 반박 논리를 펴겠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 문제에 있어 일부 지역 언론이 지자체의 의견을 상당부분 수용하고 긍정적인 보도를 내 보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화재청이 지방언론을 완전히 도외시해선 곤란하다. 중앙 언론을 통해 자신들의 견해를 피력하되 지방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이 반구대 암각화 보존대책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어진 대곡리 암각화군 명승지정도 마찬가지다. 앞서의 중앙언론 공세에 이어 ‘명승지정’이란 문화재청 고유의 카드를 이용해 강공을 폄으로서 일찌감치 지자체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의도였다. 반구대를 포함한 대곡리 일대를 명승으로 지정해 울산시가 더 이상 암각화 보존대책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도록 쐐기를 박겠다는 생각에서 조사 요원 9명을 지난달 22일 현장에 파견했다. 29일 반구대암각화 보존대책위원회, 문화연대,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와 환경운동연합이 공동 개최한 긴급기자회견도 지방과 중앙을 나누는 이분법의 결정판이다. 이들이 이날 주장한 내용은 문화재청의 것과 동일하다. 울산시민 식수확보와 별개로 암각화보존을 위해 사연댐 수위부터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특히 주목할 일은 이번 회견에 환경연합이 동참했다는 사실이다. 환경단체를 참여시킨 이유는 자명하다. 울산시가 주장하는 생태제방 쌓기를 자연환경보호차원에서 저지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일을 밑 둥지에서부터 사전 봉쇄하려다보니 환경단체까지 참여시켜야 할 지경에 이른 셈이다. 환경운동연합이 어떤 단체인가. 제주해군기지건설 반대, 4대강사업 반대 등으로 현 정권의 모태인 MB정권과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웠던 단체다. 그런데 현 정부부처인 문화재청의 주장에 힘을 보태는 기자회견에 환경운동연합이 참여했다. 자칫 문화재청의 순수한 의도에 누를 끼칠 수 있는 일이다.

내년 6월에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현 집권 여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원내 과반의석을 확보했다. 지난해 대선에서도 야당 단일후보인 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100만표 이상 차로 승리했다. 민심이 새누리당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내년 지방선거 판도는 어떻게 전개될까. 역대 선거결과를 참고하면 총선에서 지방선거로 이어질 때 국민들이 교묘하게 ‘견제 카드’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문화재청의 이분법 때문에 현 정권이 내년 울산지방선거에서 동력을 잃는다면 지금까지 그들이 주장한 내용은 모두 허사가 되고 만다. 향후 문화재청이 보다 신중하게 대국적으로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현재 울산시 5개 구·군 가운데 2곳을 진보성향 단체장이 장악하고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도 문화재청의 것과 비슷하다. 때문에 우연의 일치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들이 문화재청에 힘을 실어주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다. 때문에 문화재청은 중앙부처 중심·수도권 중심사고에서 벗어나 더 엄격한 잣대로 문제해결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주장은 그대로 피력하되 어느 한 쪽에 치우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정부부처로서의 위상도 지키고 주장에 대한 설득력도 동시에 획득하는 방법이다.<정종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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