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 시티’엔 ‘사람’이 없다
‘패스트 시티’엔 ‘사람’이 없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4.28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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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 우선도시가 선진도시
한삼건교수의도시이야기
▲ 울산시내의 거리모습. 인도가 따로 구분돼 있지 않고 자동차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있다.

의미있는 장소·시설 정비가 효과 높다

이 특집기사 초반부에서 케빈린치가 정리한 도시이미지를 판단하는 5가지 요소를 다루었다. 지난 2회의 글에서 울산의 공공건축물과 도시공원 배치에 대해 살펴봤는데, 이들은 린치가 찾아낸 ‘가장자리(edge)’와 ‘통로(path)’ 등과 연관이 있다. 울산대공원의 가장자리가 고층아파트로 둘러싸여 공원주변 간선도로에서 보이지 않고, 잘 디자인된 시청사나 박물관을 아름다운 모습으로 볼 수 없다면 도시 풍경이 나아지기란 기대하기 어렵다.

사실, 도시는 건축물이나 마을 단위와 달라서 대체로 규모가 크기 때문에 하나의 도시라 하더라도 다양한 장소가 있고, 그 모습도 천차만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운 도시를 만든다고 도시전역을 모두 잘 정비하고 꾸밀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사람과 차량이 많이 다니는 간선도로변을 정비하는 것이 통행량은 적으면서 차별성이 떨어지는 좁은 폭원의 도로 주변을 정비하는 것보다는 효과가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같은 의미에서 그 도시의 주민이 잘 알고 있고 눈에 잘 띄는 도심 강변 조망을 쉽게 하는 것이 좋다. 또한 간선도로에서 이미 잘 가꾸어져 있는 도시공원을 쉽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이며, 공공건축물 역시 이런 의미에서 주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즉, 구 단위나 광역시 단위의 행정관청은 지역의 대표성을 가지고 있고, 시민생활의 거점이기도 하기 때문에 항상 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볼일을 보는 곳이다. 반면에 개인 주택은 주인 이외에 이웃사람이나 친척, 지인 정도에게만 의미가 있을 뿐이다. 도시 전체라는 맥락에서 보면 상대적 차이가 확연하다. 이처럼 도시 전체라는 틀에서 봤을 때 의미 있는 장소나 시설을 정비할 때 그 효과가 높을 것은 분명하고, 나아가서 도시의 이미지를 높여주고 품격을 올려 줄 것으로 기대되는 것이다.

▲ 네덜란드 헤이그에서는 도심으로 들어가는 자가용을 막는 보형물이 설치돼 있다.

늘어난 차량보유로 위협받는 보행공간

이번 글에서는 도심 보행공간에 대해 살펴본다. 현대 도시가 당면한 문제는 많지만 그 중 차량 관련 문제는 이전 인류가 경험 못한 문제를 던지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 집집마다 자가용을 가지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필자의 감각으로는 88올림픽 전과 후가 우리 도시 모습을 크게 바꾼 전환점이라고 느끼고 있다. 특히 울산시민은 전국에서도 높은 자가용 보유율을 보이고 있어서 2011년 현재 가구 1.1대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짧은 시간에 자동차가 희소했던 도시에 자동차가 넘쳐나게 되면서 그 폐해도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그중 가장 심각한 것은 자동차가 사람의 보행영역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 점이다.

가장 먼저 차량으로 인한 유무형의 피해는 일단 사람 대 차량 구조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차량은 이동을 위한 보조 수단일 뿐 사람의 이동이든 물품 운반이든 주체는 인간이어야 한다는 대전제에서 논의가 시작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상은 모든 것이 차량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행정은 언제나 차량 소통과 주차 문제 해결을 우선시 하고, 일반시민은 스스로가 운전자로서의 입장에서만 도시를 바라보고 있다. 예를 들면 조그만 틈만 보이면 타인의 불편은 아랑곳없이 주차를 하고, 보행자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위협적인 운전을 하는 일이 다반사다.

일·서유럽의 보행자 중심 도시개편

다른 나라의 사정은 어떨까. 유럽이나 일본의 대도시는 빠른 곳은 1960년대부터 도심지역을 차량이 아닌 보행자 중심으로 정비해오고 있다. 현대도시에서 자동차는 편리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품이다. 그러나 자동차가 도시의 주인이 되도록 내버려두면 결국은 인간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인간생활이 불편해지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사태가 이렇게 되기 전에 막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보행자 중심으로 도시공간을 정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차가 가능한 곳과 불가능한 곳을 철저하게 구분해 이를 제도로 시행하는 것이다.

필자는 일본과 서유럽 여러 도시에서 직접 운전을 해 본 경험이 있다. 일본이나 유럽의 도시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좁은 국토에 많은 사람이 모여 살고 있는데다가 역사가 오랜 도시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중심부는 도로 사정이 나쁘고 주차공간이 열악하다. 이런 그들이 내린 결론은 명쾌하다. 자동차가 아닌 보행자 중심으로 도시공간을 재편하는 것이다.

우선 도심에 자가용 자동차 진입을 막아 통행 차량의 수를 최소화하는 데 역점을 둔다. 런던은 혼잡통행세를 내야하고, 암스테르담은 일반차량의 도심 진입이 불편하다. 즉, 도심에 자가용이 통행할 수 없는 구간을 두다보니 멀리 우회해서 가야 한다. 이렇게 확보된 도로는 보행자 천국으로 조성이 되거나 트램이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이 통과하는 몰이 된다. 결국 서유럽 선진국에서는 도심이 혼잡해지면 도로를 더 넓혀주는 것이 아니라 진입차량을 줄이는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울산의 디자인거리

우리 울산의 경우도 아직 초보적이기는 하나 이런 변화가 나타나고 있어서 주목된다. 주로 각 구군이 조성 중인 디자인거리 정비 사업이 그것이다. 울산시 남구의 경우 이미 울산대학교 앞과 삼산동 현대백화점 부근의 디자인 거리, 그리고 남구청과 문화예술회관 사이를 통과하는 예술이 숨 쉬는 거리 등을 정비한 바가 있다. 중구는 현재 울산초등학교와 시계탑 네거리 사이 구간을 정비하고 있다. 울주군은 언양시외버스터미널 앞 헌양길 정비가 한창 진행 중이다. 그런데 이들 도로는 모두 차량이 일방통행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보행자 전용 도로가 되지 못한 것은 이들 거리에서 영업을 하는 업주들 대부분이 차량 접근을 막으면 장사가 안 된다는 생각에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울산시 중구 젊음의 거리와 보세거리 등은 아케이드를 설치하면서 보행자 전용도로화해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이런 전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울산에서 보행자 전용도로 정비가 활발하지 못한 것은 아쉽기만 하다. 사실 인간은 걷도록 프로그램돼 있는 신체구조를 가지고 있다. 오히려 걷지 않으면 병을 얻게 되고, 건강을 잃게 된다는 것을 우리들 대부분은 잘 알고 있다. 이런 점에서 걷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실현하고, 건강을 챙겨주며 화석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한편, 안전한 도시를 만드는 길은 도시를 걷기 편하게 만드는 데 있다고 하겠다.

혼잡한 삼산의 교통문제 해결

현재 삼산동 디자인 거리 부근에서는 곧 개장할 대형 쇼핑몰 때문에 교통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미 허가가 나서 건물은 다 지어졌고, 개관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교통문제를 고민하는 것은 순서가 잘못된 것 같다. 필자의 생각은 이 일대는 이미 쇼핑시설이 밀집한 곳으로 유동인구와 차량진출입이 많기 때문에 단계별로 보행자 천국을 확대 운영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본다. 즉, 차량과 보행, 두 가지를 모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에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방법은 우선 휴일부터 이 지역 일정구간을 자가용 진입 통제구간으로 지정하고 이것이 정착되면 점차 확대하는 것이다. 그 범위는 터미널사거리를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시외버스터미널 옆의 달삼로, 북쪽으로는 보람병원 옆 삼산중로 100번길과 화합로 194번길, 동쪽으로는 농수산물시장 옆의 삼산로 318번 길과 317번길, 서쪽으로는 현대백화점 옆의 삼산중로가 좋을 것 같다. 이렇게 하면 대략 사방 600m 범위가 되는데, 이곳에는 백화점 두 곳, 대형 공영주차장 두 곳, 시외버스 및 고속버스터미널, 농수산물시장, 주상복합아파트 등이 위치하고 있고, 울산시를 대표하는 간선도로인 삼산로가 통과하고 있어서 자가용이 아닌 대중교통과 보행공간화 하면 효과가 높다고 본다.

이곳에 백화점과 버스터미널, 농수산물 시장, 공영주차장을 연결하는 공중 보행로를 조성하거나 삼산로 지하공간을 활용해 지하2층은 주차장, 지하1층은 상가로 개발한다면 자연스럽게 보행공간이 확보된다. 이곳은 울산에서 가장 토지가격이 높은 곳이라 토지를 새로 매입해 공영주차장을 추가 건설하거나 도로 확장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지하공간과 공중을 활용하면 별도의 토지비 부담없이 시설 공사비만으로 이 일대를 정비할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지하상가 분양이나 임대, 지하주차장 수입 등을 고려하면 별도의 재원없이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쇼핑객의 대중교통 이용을 유도하고 보다 질 높은 보행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 이 범위 내에서 무료 순환버스를 운행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세계의 많은 도시는 도심에 자가용 진입을 억제하는 대신 무료순환버스를 도입하고 있는데, 도쿄역전, 도쿄 오다이바지구, 영국의 케임브릿지와 리즈 등에서 직접 이용해 봤더니 정말 편리했다. 주차 취약지역인 이 일대에 자가용 진입을 막기 위해서 강변주차장 같은 외곽에 주차를 한 후에 무료순환버스를 타고 진입하거나 아예 집에서부터 대중교통으로 접근하도록 하면 효과가 높을 것이다.

학교 주변의 위험한 보행여건

삼산동 백화점일대 뿐 아니라 도심 소재 학교 주변은 어린이들이 교통사고 위험에 상시 노출돼 있어서 보행로 확보가 시급하다. 특히 아이들의 등하교 시간에는 차량 진입자체를 막거나 별도 보도를 설치하는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필자가 몇 년 전, 시민단체 회원들과 등교시간 초등학교 앞에서 직접 관찰조사를 해 본 결과, 일반차량은 물론 선생님들의 출근차량과 학부모 차량이 더욱 문제였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통학 길에서 어린이와 모든 차량을 완전 분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차도와 별도로 보도가 설치된 곳에서도 보행여건이 나쁘기는 마찬가지다. 보도를 차지한 불법 주차 차량과 각종 지장물로 보도에 무단 진입하는 차량을 막기 위해 볼라드가 설치되지만 규격에 문제가 있어서 경원시 되고 있는 것이 더욱 문제다.

보행자 중심의 여유가 있는 도시

현대 도시의 여러 문제 가운데 자동차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따라서 도시의 품격을 가르는 기준은 아름답고 멋진 시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행자가 주인공인가 아닌가 하는 점일 것이다. 보행이 중심인 도시는 깨끗하고 조용하다. 지구 환경문제에도 관심을 가지는 교양인들의 도시다. 사람 간의 소통이 이루어지고 여유와 품격이 있는 도시다. 속도와 양이 아니라 느림과 삶의 질이 우선시되는 도시다. 이미 세계의 많은 도시가 이 방향으로 가고 있고 그 성과는 도처에서 확인되고 있다. 울산의 경우도 도심 보행환경이 개선돼 사람을 위한 사람의 도시가 된다면 우리 삶의 질이 높아지고 도시의 품격도 함께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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