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년회 유감
망년회 유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7.12.26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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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전환기가 돼야 잘못을 느끼고 마음을 가다듬는 습성을 지닌 존재인가 보다.

한 주일이 시작되는 월요일 날 각오를 다지고, 달이 바뀐 첫날 계획은 실천 확률이 높다는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남에게 고통을 주는 일을 했거나 죄 짓는 일을 한 적이 있어 마음이 괴로울 때, 자신의 태만으로 일을 망쳤을 때, 인간은 ‘초 자아적인 인간정신’으로 접근하고자 시도하는 경향이 있다.

새해를 앞두고 이런 시도를 한번 해 보는 것이 바로 ‘망년’이다.

무속인이 당굿을 할 때 집 앞 고목이나 신목에 꽃바구니를 매달아 두는 습속이 있었다. 굿을 하는 동안 젊은 무녀를 그 꽃바구니에 태워 승천시키는 의식을 갖는데 그 때 마을 사람들이 그 꽃바구니에 동전을 던져 ‘하늘의 용서’를 빈다.

당굿이 끝 난 후에도 꽃바구니를 매달았던 밧줄은 사철 내내 그 고목에 매달아 두고 그 줄을 ‘하늘의 신’과 통하는 ‘신명줄’이라 여겼다.

마음에 죄진 일이 있거나 가책 받는 일을 한 사람이 이 줄을 붙들고 참회하는 모습은 해가 바뀔 때 자신의 과오를 뒤돌아보고 뉘우치는 ‘망년’과 결국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셈이다.

프로이드는 신과 직결된 인간의 양심을 ‘초자아’라 했는데 우리의 옛 민속인 ‘신명줄’이 바로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이 초 자아적인 연결 매체가 아니었을까 싶다.

요즘 망년회는 이와 비교할 때 많이 변질됐다.

12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시작된 동창회, 향우회, 무슨 무슨 모임은 사람을 거의 매일 밤마다 술독에 빠지게 하다가 막상 세모 밑이 되면 파김치가 돼 드러눕게 만드는 것이 얼마 전까지의 모습이었다.

‘망년’이 이런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이 아님을 외국의 예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그리스정교를 믿는 러시아에서도 연말이면 가족이나 친지끼리 모여 앉아 그 한 해 동안에 저지른 잘못을 고백하면 면책되는 관습이 있었던 모양이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속에서 도벽이 있는 한 백작의 고백 장면이 나온다.

“어느 날 저녁 이반의 가정 음악회에 초대돼 갔어. 거실 책상 위에 3루블 짜리 지폐가 있길래 슬쩍 했지. 지폐가 없어 진 것을 안 이만은 야단법석을 떨더니 일하는 아이 디나를 의심하는 거야. 난 끝까지 시침을 뚝 떼고 있었지. 결국 그 고아소녀는 한 밤중에 보따리 들고 집에서 쫓겨 나갔어. 그 날 이후 그 아이의 원망하는 눈초리가 밤마다 떠올라 잠을 이룰 수가 없어. 이 고통은 3백만 루블로도 갚을 수 없을 것 같아.”

2007년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인간이 살면서 어찌 기쁜 일만 있을 수 있겠는가? 슬펐던 일, 괴로웠던 일 들을 망각의 재능으로 덮어 가는 것도 삶의 일부분일 게다.

술병이 날 정도로 저녁마다 마셔 대는 것 보다 세모를 앞두고 ‘인간의 초자아’에 접근해 봄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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