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도시 울산, 그저 웃지요
부자도시 울산, 그저 웃지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4.28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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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09학번이니 2008년 연말쯤으로 기억된다. 부모 된 도리로 수능을 막 치른 아이에게 위로와 격려 겸 공연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 당시는 ‘뮤지컬 맘마미아‘가 대세여서, 서울에서부터 불어온 맘마미아 열풍이 대구까지 밀려왔다. 마침 계명대학 아트홀에서 공연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잽싸게 예매를 했다. 한 시간 반을 달려 계명아트홀을 보는 순간, 대학에 이런 멋진 공연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촌사람처럼 입을 딱 벌렸다. 맘마미아의 여파 때문인지 아이는 다음 해인 대학 1학년 때 영어연극반에 들더니 맘마미아 배우 역을 맡아 무대에 섰다. 맘마미아 울산공연은 2년 뒤에 열렸다.

2013년 3월, 해운대 벡스코 오라토리움에서 ‘이장희 콘서트’를 봤다. 몇 년 전 벡스코 공연장에서 불편하게 공연을 봤던 적이 있던 터라 내심 걱정을 했다. 하지만 웬걸, 그새 벡스코 앞에 오라토리움이란 근사한 홀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객석과 눈높이를 맞춘 무대, 안락한 의자. 해변 가를 연상하게 만드는 유려한 객석배치에 나는 모처럼 공연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 날 나는 부러움과 서운한 마음을 함께 가지고 울산에 돌아왔다.

부산은 시민들의 문화적 갈증을 제 때 제 때 풀어주는 문화도시로 탈바꿈을 하고 있는 반면, 그 가수의 전국투어콘서트란 일정에 울산은 쏙 빠져 있던 것이다. 서울 부산을 거쳐 대전, 대구, 창원…. 몇 번을 눈 닦고 봐도 투어공연에 울산은 없었다. 해운대와 울산은 지척에 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울산에서 하는 공연을 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20세기 유물 같은 KBS다목적 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인 문화예술회관, 동구민에게만 열려 있는 듯한 현대예술관. 인구 120만을 자랑하는 부자도시의 문화 창구가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그리고 아직까지 질 좋은 공연이 부산, 대구 찍고 창원으로 건너 띄는 이 모순을 보고 답답한 심정을 금치 못하고 있으니.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울산대 근처다. 목 좋은 도로가에 자리잡은 ‘아산스포츠센터’를 지나갈 때면 가끔씩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인구 50만의 창원 성산 아트홀을 떠올리며 이 건물이 울산대 아트홀이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서 학생이나 시민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공연들이 상설화되는 공연장이었으면, 울산의 관문에 위치해 있어 인근 양산이나 경주 사람들이 너나없이 공연을 보러오면 학교뿐만 아니라 울산도 저절로 홍보가 될 거라는 순진한 생각들을 해본 적이 있다. 그러면 나도 대구로 부산으로 유랑극단 따라 다니는 각설이 신세는 면할 듯싶다.

KTX역사가 생기고 울산사람들이 서울을 다니는 빈도가 잦아졌다고 한다. 서울역에 내려서 택시를 타면 기사가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 경우가 많단다. 울산서 왔다고 하면 부자도시에서 왔다며 부러워들 한다고, 그럴때면 울산 사람들은 괜스레 어깨가 으쓱 올라가며 자긍심을 느낀다고 한다.

통계적으로는 다 맞는 말이다. 울산은 전국에서 소득 1위라고 뉴스에서 떠든다. 소득 1위뿐만 아니라 삼산의 유흥업소가 인구밀도 당 전국 1위라고 한다.

하지만 더 이상 이런 뉴스가 자랑거리가 아니라고 본다. 시립도서관, 미술관하나 변변히 없는, 그저 돈만 많은 졸부도시라는 비아냥거림으로 들린다. 정작 소득이 높아도 가족들과 마땅히 돈 쓸 곳도, 즐길 거리도 태부족이다. 그나마 가족단위로 즐길 수 있는 울산 대공원이 있어 체면치레를 할 뿐.

이웃나라 일본을 경제대국이지 선진국이라 부르지 않듯, 울산도 부자도시라는 닉네임이 거북하게 들릴 때가 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자꾸 들으면 질리는 법이니까.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울산이 부자도시에서 명품도시로, 명품도시에서 문화도시 울산으로 변모하는 소박한 바람을 꿈꾸어 본다. 주중에는 친구들과 시내의 무비꼴라쥬가 있는 독립영화관에서 영화를 한 편보고, 주말이면 남편과 정자 바닷가를 끼고 있는 공연장에서 연극 한편을 보면서 멋진 중년을 보내는 상상을 해본다.

그러면서 환하게 웃어본다. 그게 진짜 부자도시의 사람 사는 꼴이지, 부자가 따로 있냐고….

박종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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