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글쟁이로 산다는 것
이 시대, 글쟁이로 산다는 것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4.15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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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글만 쓰면서 밥벌이하는 작가들이 얼마나 될까? 이런 질문은 무의미할 것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다른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야만 한다.

시가, 소설이 곧 밥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고려대학교 불문과 황현산 교수는 수업 중 학생들에게 “시만 써서 먹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이어 “얼마나 버는가?”의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단다.

그는 시도 쓰고 길지 않은 산문도 기고하면서 30만원을 벌고 그것으로 생활한다고 답해 주었다. 당연히 학생들은 뜨악한 얼굴이 됐다. 아마 그도 교수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 않았으면 글쟁이로서는 가장 노릇을 못할 것이 자명한 일이다.

2009년 ‘문화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문화예술인 63%가 월 평균 100만원 이하를 벌고, 수입이 전혀 없는 예술인도 37%에 달한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는 4인 가족 기준으로 볼 때 최저생계비 144만원에도 못 미치는 금액으로 그만큼 예술인들의 생활이 열악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10명 중 4명은 한 푼도 벌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이 자리에서 ‘예술인복지법’을 논하고 싶지 않다. 예술인들을 위한답시고 출범한 한국예술인복지재단도 오늘은 언급하고 싶지 않다. 예술인 복지법이 통과하고 뭐가 달라진 게 있는가?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하나 만들어 놓은 게 다다. 그 곳에 종사하는 이들의 인건비를 제하면 실제로 수혜를 필요로 하는 예술인들에게는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여력이 많지 않다. 대개 기대는 실망을 부르는 법이라 애초 이 법이 시행된다했을 때도 콧방귀를 꼈다. 앞으로 지켜보겠다. 얼마나 건실하게 튼튼하게 예술인들을 받쳐주는지…

‘배가 부르면 좋은 글을 쓰지 못 한다’고들 하는데 참 못마땅하다. 예술가들이 좀 잘 먹으면 안 되는가? 잘 살면 안 되는가? 문제는 글 쓰는 이들의 사고방식의 문제를 먼저 따져야 할 것이다.

무릇 글 쓰는 이들은 ‘음풍농월’로 시절을 비웃고 자신의 영달을 위해 글짓기를 하는 일은 먼저 없어져야한다.

작가들이 존경받으려면 철저한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 이러한 자기 컨트롤이 없으면 손가락질 받기 딱 알맞다. 그리고 자만과 아집도 털어버리자.

지난달 20일 울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업무 공동 추진 협약식이 있었다. 앞 말 뒷 말이 무성한 터이지만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상생과 공존을 위한 네트워크 파티’라는 다소 생경스러운 말도 있었지만 이 날 참석한 인사들 중 이강민 울산민예총 지회장의 “낡은 대립을 이제 끝내자”는 인사말이 인상 깊었다.

이 한 마디가 이날의 상황을 모두 설명한 것이다. 예술가들은 자존심을 먹고 산다. 자기 작품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패거리 만들어 서로 힐난하고 시기 질투하면 안 된다. 자신이 맡은 일에 충실히 복무하면 되는 것이다.

필자도 고민을 많이 한다. 이 시대, 글쟁이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나의 길을 잘 걸어가고 있는가를 늘 물어본다.

글 끝에 함민복 시인의 시 ‘긍정적인 밥’이라는 작품을 내려둔다.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긍정적인 밥>

무릇 글을 쓰고자 하는 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비루하다는 말을 듣기 싶고 굴욕의 현실도 뛰어 넘어야 한다.

함민복 시인의 ‘긍정적인 밥’은 작가의 각박한 일상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왜 작가이어야 하는가를 묻는다. 작가도 밥을 먹어야 하고 가족들의 생계도 마땅히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작가의 일차적인 의무는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어야 한다.

무릇 예술가로 이 땅에서 산다는 것은 현실을 절망할 것이 아니라 현실을 보듬는 자세가 필요하다.

좀 덜 버는 것은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예술가로서 어떻게 살아야하는 가를 치열하게 고민할 때다.

<이기철 인문학서재 몽돌 관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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