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래위치만 못한 ‘숨바꼭질 공공건물’
술래위치만 못한 ‘숨바꼭질 공공건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4.14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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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계획과 공공건축물
한삼건교수의도시이야기
▲ 도심 속 빌딩들 속에 묻혀있는 것이 아닌 도로에서도 쉽고 넓은 시야로 확인할 수 있는 확 트인 광화문.

실존의 주체인 ‘내’가 세상을 향해 설 때 내가 있는 그곳에는 나를 중심으로 ‘전후좌우(前後左右)’라는 방향이 생겨난다. 그와 함께 ‘동서남북(東西南北)’이라는 절대방위는 인간생활과 질서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의 위치와는 관계없이 이미 만들어져 있다. 이는 건축물이 모인 도시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시대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전후좌우’와 ‘동서남북’에서 파생된 ‘정연한 질서’를 갖추고 있다. 한편, ‘전후좌우’라는 관념에서 생겨난 ‘전(前)’ 즉, ‘앞’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향이 시작되는 원점이다. 우리가 사물을 바라볼 때 ‘앞’ 즉, ‘정면’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건축에서 정면은 그 시설 주인의 얼굴이며, 상징이다. 이런 관점에서 동서고금의 많은 도시는 ‘도시 축’을 가지고 있고, 건축물은 정면성을 강조하는 디자인과 배치를 하고 있다. 주요 건물주변에 광장이나 낮은 건물을 배치하고, ‘좌향(orientation)’을 강조한 건축디자인과 입지는 이 같은 디자인 목표를 실현하는 방법이다.

울산의 도시디자인을 생각할 때 간선도로에서 아예 보이지 않거나 일부만 보여주는 공공건축물이 너무 많아서 문제다. 도시디자인의 논리보다는 지역이기주의를 등에 업은 정치논리나 경제논리가 건축이나 도시디자인 논리를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글을 통해 이미 짚어보았지만, 도시가 멋있게 보이도록 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도시가 알기 쉬워야’ 한다는 점이다. 도심의 빽빽한 빌딩 숲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는 데는 눈에 띄는 지형지물이 도움이 된다. 내가 있는 곳을 알려주는 이정표로는 도심의 대형 건축물이나 중요 공공건축물, 혹은 숲이나 강, 다리 같은 것이 있다. 그래서 이정표가 돼야 하는 건축물이나 시설물 디자인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건축물디자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입지다. 건축물은 규모가 크고, 한번 지어지면 오랜 세월 같은 장소에 뿌리 내리고 서 있는 것이 숙명이기 때문에 특히 입지조건은 다른 어떤 조건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바로 이런 관점이 크게 결여된 것이 울산의 도시디자인이다. 광역시 승격 이후 기존 시가지 일대에 대한 전면적인 도시계획 재검토가 없었다는 것은 앞의 글에서 기론했다. 이와 함께 광역시 승격 이후 신설되거나 증축이 된 대형 공공건축물과 대규모 공원녹지와 같은 도시기반시설 등의 입지선정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가로를 가꾸고, 공원시설을 정비하고, 간판을 예쁘게 꾸미는 것만이 도시디자인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인을 탄생시키는데 골격을 비롯한 기본바탕은 버려두고 얼굴의 부분화장과 성형에만 관심을 둔 것이다. 이런 점 울산의 공공시설은 도시를 미인으로 만들어줄 잠재력을 가진 장소에 입지해야 하는데도 이를 무시해 왔다고 하겠다.

 

▲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문수구장.

먼저, 울산시청사를 살펴보자. 현재의 시청건물은 1969년 말에 준공돼 이듬해 1월 1일에 개청돼 오늘에 이른다. 그간 의회동이 생겼고, 2009년에는 지금의 본관인 신청사도 지어졌다. 울산시청 부지는 중앙로와 돋질로가 교차하는 사지(四支)교차로(십자도로)의 한쪽 모서리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연면적이 2만2천356㎡에 13층 높이 본관을 새로 지었지만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으니, 울산시청사가 시설의 위상에 비해 건축물의 시각적인 상징성이 뒤처진다는 점이다. 현재의 울산시청 정문은 의회동 정면에 열려있다. 의회동은 규모도 아담하고 층수도 낮아서 정문에서 보면 앞에 가리는 것이 없어서 정면 전체가 시야에 편안하게 들어온다. 반면에 본관은 정면을 비스듬하게 바라보면서 들어가고, 층수가 높아서 중앙현관만 시야에 들어오게 된다. 지역뉴스 화면에 거의 매일 등장하는 울산시청사는 항상 보도기자 뒤에 일부분만 보이거나 전체모습이 바로 보이지 않고 왜곡돼 보인다.

이런 문제 때문에 시청사 준공 즈음에 건축 및 도시디자인 전공교수들을 모아놓고 열린 자문회의석상에서 필자는 돋질로 쪽에서 본관을 향해서 보행 축을 새로 만들고 정문도 하나 더 만들자고 했다. 시청 남쪽 담장이 있는 이곳에서 봐야 본관을 시야에 모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시청사를 통째로 옮기는 것이다.

필자는 지난 2001년에 수립한 울산시도시경관계획 작업에서 울산공업고등학교 부지에 시청을 옮기는 대안을 제안한 적이 있다. 공고는 부지면적이 넓은데다가 도심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어서 초고층형으로 건물을 지어서 시청사를 비롯한 여러 공공청사가 입주하는 행정타운을 구상했었다. 조선시대 울산객사 입지와 배치를 보면 도시공간에서 차지하는 위계를 잘 드러내고 있어서 당시 사람들은 땅을 읽어내는 능력이 탁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울산시청사는 앞으로도 21세기라는 시대에 맞추면서 울산객사같은 그런 성격의 입지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울산시 남구 옥동에는 현재 대형 공공건축물 공사가 한창이다. 바로 지난 2011년 11월 24일에 기공식을 한 울산지방법원과 검찰청 청사로 지상 13층 규모의 골조가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1982년에 당시 경상남도 울산시에는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원과 부산지방검찰청 울산지청이 나란히 설치됐고, 이후 광역시 승격을 맞으면서 1998년 3월 1일에는 울산지방법원과 울산지방검찰청으로 동시에 승격했다. 지금 사용 중인 청사도 이 무렵에 증축이 돼서 오늘에 이른다. 이후 울산이 광역시로 비약적인 성장을 하면서 울산의 법조 타운도 청사가 비좁고, 노후해 현재 새로운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 두 건물을 보면 늘 아쉽다. 문수로변 빌딩에 가로막혀 모습을 꼭꼭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법원과 검찰청 청사도 모습이 안보이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법원과 검찰청 신청사마저 이런 모습이 되고 만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만약 이 건물이 문수로변으로 나와서 정면에 넓은 광장을 갖추고 배후에 산을 두고 서 있다면 어떨까 상상해 보시기 바란다. 상상이 안 되는 분들은 경상남도 도청이나 서울 세종로에 서 있는 광화문과 경복궁을 떠 올려 보면 된다.

다음은 중구와 남구 지역의 주요 공공건축물을 살펴보자. 여기서는 개별 건물의 디자인은 언급하지 않고 입지만 보기로 한다. 중구청사는 현재 증축공사가 시작됐다. 1990년에 중앙동 주민센터 자리에서 현재 위치로 신축 이전한 중구청사는 뒤편으로 북부순환도로가 지나고 서쪽으로 화합로가 지난다. 시청처럼 교차로 모서리에 입지하고 있는데다가 원래의 위치보다 중구의 지리적 중심에서 동쪽으로 벗어나 있고 주변이 학교와 아파트단지 밖에 없어서 중구를 대표하는 상징성은 찾기 어렵다. 더구나 화합로변에는 수목이 너무 무성해서 중구청사 건물이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이 외에 중구지역 소재 주요기관으로 울산광역시 교육청, 울산지방경찰청, 중구보건소, 중부경찰서 등이 있는데 모두 입지에 문제가 있다. 교육청은 북부순환도로변에 있지만 3면이 초고층 아파트로 둘러 싸여 있는데다가 도로를 지나쳐가면서 비스듬히 보게있어서 인지가 잘 되지는 않는다. 경찰청은 표고가 높은 함월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지만 북부순환도로같은 간선도로에서 비켜나 있어서 보이지 않고, 경찰서와 보건소는 중구에서 가장 가장자리인 북구와의 경계인 동천강변에 서 있어서 태화동이나 다운동 지역 주민에게는 너무 먼 위치이다. 만일 이들 기관이 중구에서 공간적인 위계가 높은 곳이면서 번영로나 강변도로 같은 주요 간선도로에서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면 중구의 도시모습도 한결 달라지지 않을까.

남구지역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문화예술회관은 번영로 변에 자리 잡아서 입지는 좋지만 도로 맞은편에는 부지는 좁으면서 높기만 한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서서 번영로에서 바라보는 가로경관은 시각적 균형이 깨져 있다. 남구청사도 교차하는 도로 모서리에 자리 잡았지만, 돋질로에 면한 정면에 넓은 주차장이 있어서 그나마 정면성은 확보돼 있다.

2011년에 문을 연 울산박물관도 도시디자인 관점에서는 개선여지가 있다. 울산대공원 동편 두왕로와 면한 곳에 자리 잡은 박물관은 정면에 조경수를 너무 많이 심어서 문제다. 부지가 대공원의 녹지에 둘러싸여녹지가 충분한데다가 통상 저녁 6시면 문을 닫아 소음 영향이 적은데도 정면을 수목으로 막다보니 잘 디자인된 건물이 보이지 않고, 위치도 알기 어렵다. 전면 도로가 6차선으로 넓고, 보행자가 별로 없는 곳이어서 빠른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에서 쉽게 인지가 돼야 하는데 그런 배려가 소홀하다. 문수축구장도 마찬가지다. 드넓은 문수로에서 보면 축구장은 아주 잠깐 보일 뿐이다. 아름답다고 찬사를 받았던 문수구장도 우리는 애써 숨기고 있다.

이처럼 울산의 공공건축물은 거의 예외 없이 숨어 있거나 가려져 있어서 간선도로에서 시각적으로 인지가 안 되거나 자신이 가진 가장 멋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결과는 결국 도시계획에서 도시공간의 위계나 주변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적절하게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도시를 입체적이고 종합적인 관점이 아니라 평면적이고 일면적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공공시설 입지 결정이 매번 정치적 논리나 경제논리에만 끌려 다니는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건물 하나만 보아서는 최고의 건축가가 설계한 멋진 건축물이라 하더라도 그 입지가 적절하지 못하면 도시공간의 질을 높이고 품격을 끌어올리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앞으로도 반복해 강조 하겠지만, 바람직한 울산도시디자인은 전체와 부분, 과거와 현재, 도시계획과 개별 시설물의 디자인이 모두 조화가 될 때 비로소 진가가 드러난다. 그중에서도 울산광역시와 각 구군을 상징하는 공공건축물은 입지선정 단계부터 도시디자인의 질을 높이는 방안을 고려해 선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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